[경제패트롤] 주가조작 수사, 증시파장에 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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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벌써 9월이다. 절기론 상큼한 가을인데, 돌아가는 형세는 어째 갈수록 더 어수선해지는지 모르겠다.

대우.대한생명.서울은행.현대전자 사건에다 국세청 세무조사까지…. 기존 현안도 제대로 안 풀리는 판에 새로운 문제들은 계속 터져 혼란스럽다.

특히 최근 들어 '재벌 개혁' 을 향한 정부 발걸음이 한결 빨라지는 느낌이다. 원인과 강도는 다르지만 1~3위의 재벌이 모두 편치않은 처지이고, 다른 그룹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예견됐던 일이긴 하지만 훨씬 파상적인 압박이다.

검찰이 현대전자 건을 파고 있다는 것은 웬만큼 알려진 사실이지만, 막상 터지고 보니 파장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지금까지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바이 코리아' 돌풍의 주역인 현대증권 이익치 회장의 검찰 출두는 결과에 따라 현대 경영구조는 물론 경제 전반에 상당한 파괴력을 가질 것이다.

바이 코리아는 특히 11조원이 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펀드로 증시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쳐왔다는 점에서, 수사 방향에 따라 주가가 다시 춤을 출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검찰이 정몽헌 (鄭夢憲) 회장 소환 의사까지 밝힘에 따라 사태가 어느 단계로까지 확산될 지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가진 자' 의 재산 변칙 상속.증여에 본격적으로 손대겠다는 발언의 충격파도 심상치 않다.

국세청장이 입을 열었을 때는 단단히 마음먹고 나섰다는 얘긴데, 과연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는 아니라지만, '총수 중심' 의 재벌 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더 큰 뜻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8일로 예정된 金대통령과 6~30대 그룹 회장간 간담회는 정부 의도를 좀 더 분명히 감 (感) 잡을 수 있는 기회다.

'대한생명에 대한 감자 (減資) 명령은 잘못' 이란 법원 판결은 마치 무소불위 (無所不爲) 의 힘을 가진 양 착각하는 정부에 제동을 거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로 인해 잔뜩 스타일을 구긴 금감위는 전략을 바꿔 대생 측에 10일까지 자구계획서를 제출토록 했다. 일단 '절차' 를 지킨 후 안되면 주식 소각→공적자금 투입→경영정상화 후 매각을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최순영 (崔淳永) 회장측도 다시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태세라 대생 경영권을 둘러싼 공방은 장기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골치 아프긴 대우 쪽이 더하다.

사실상의 그룹 해체 작업은 시작됐지만 우려했던 대로 금융기관간 이해가 맞서 워크아웃 (기업개선작업) 작업이 처음부터 순조롭질 않다. 계열사.협력사들이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정부 대응은 무엇인지 주목된다.

이밖에 정보통신부가 발표할 예정인 휴대폰 5사의 '통화품질조사 결과' 그리고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금리 움직임 등도 빼놓을 수 없는 관심사다.

김왕기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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