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헬멧 쓴 '인간 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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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맨십일까 효심 때문일까. 남자 장대높이뛰기에 미국 대표로 출전한 토비 스티븐슨(28)의 머리에는 늘 아이스하키 헬멧이 씌어 있다. 26일 새벽(한국시간) 아테네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에서 열린 예선에서도 그는 헬멧을 쓰고 하늘을 날았다.

▶ 아이스하키 헬멧을 쓴 스티븐슨이 남자 장대높이뛰기 예선에서 바를 넘으며 재미있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테네 AP=연합]

막대의 탄력을 이용해 1㎝라도 더 높이 솟구쳐야 하는 판에 무겁고 거추장스러워 보였지만 그는 예선 통과 기준 기록인 5m70㎝를 가뿐히 넘어 결선에 진출했다. 꼬박꼬박 헬멧을 쓰고 다니는 별난 모습에 스타디움의 대형 전광판도 계속 그를 클로즈업했다. 그의 헬멧에는 사연이 있다. 고교 졸업반이던 1995년 부모가 간곡히 당부했다고 한다.

"높은 데서 떨어지는데 머리를 보호해야지"라고. 그때부터 연습 때나 경기 때나 늘 헬멧을 썼다고 한다. 그는 예선 경기 이후 기자들의 질문에 "헬멧이 이젠 유니폼이 됐다"면서 "스탠퍼드를 나온 (뛰어난) 머리를 보호해야 하잖아요"라며 웃었다.

스티븐슨은 미국 명문 사립인 스탠퍼드대의 경제학과를 졸업한 수재다. 코치도 없이 혼자서 디지털 영상분석기를 이용해 기술을 분석하고 개발하는 '별종'이기도 하다. 지난 5월 미국에서 열린 한 대회에서 6m를 넘어 올 시즌 세계최고기록을 낸 실력도 갖췄다. 역대 기록에서 6m를 넘은 선수는 은퇴 선수를 포함해 모두 9명뿐. 그래서 스티븐슨은 이번 대회 강력한 금메달 후보다.

아테네=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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