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상 '우리에게 공부란 무엇인가' 특집 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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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3일 발간될 무크 (부정기간행물) '현대사상' 9호 (민음사.8천원)가 '우리에게 공부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 관심거리다.

이 잡지의 주간 김성기 (42.전주 한일장신대 교수) 씨가 이번 기획을 진행한 근저에는 ▶외국학문의 무차별 도입 ▶인문학의 위기 ▶대학공부의 수행 (修行) 적 성격 퇴행 ▶이론과 실천의 결합력 부재 ▶ 'BK 21' (대학육성 프로그램) 결정과정에서 교수들의 주체적 참여 배제 등이 깔려 있다.

이 결과 대학의 학문 전반은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으며 그나마 'BK 21' 은 학문과 사업을 혼동함으로써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김 주간의 지적이다.

이번 기획에 참여한 필자들은 우선 기존의 공부풍토에 반기를 들고 나온다.

웹 기획가 강유원 박사는 외국자료의 '엉성한 베끼기' 가 아니라 차라리 '철저한 베끼기' 를 통해 학문적 기반을 다지자는 주장을 내세운다.

여기서 강 박사의 베끼기는 2차자료가 아니라 원저작의 인용만으로 글을 쓰면 공부는 자연히 깊어진다는 뜻이다.

특히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등 패러디적 글쓰기를 계속중인 진중권씨가 기존의 강단 학문풍토에 던지는 비판을 새겨들을 만하다.

"한국의 지성계에는 전세계의 유명한 담론이 모두 들어와 고지를 형성하고 있다. 자, 나는 이것들을 하나하나 건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반응이 생기고 빈틈도 드러날 게 분명하다. 바로 그 빈틈을 차고들어가는 거다. "

이는 좀처럼 자기해체를 허락하지 않는 보수적 지식체계에 균열을 가게 할 방도를 먼저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소설가 출신의 자유기고가 고종석씨 역시 대학의 엄숙주의를 향해 야유를 보내는 편이다.

그는 책을 앞에 두고서 하품과 기지개는 물론 흐트러뜨리는 것마저 금물이라고 한 연암 박자원의 말을 옮기면서 자신은 책을 베고 누워 잠을 자고 심지어 밟고 올라가 전등을 갈아끼우기도 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결국 고씨는 자유로운 공부자세가 갖는 강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김정란 (상지대.불문학) 교수가 말하는 '공부의 길' 에선 '실천적 공부' 의 중요성이 강하게 풍긴다.

김 교수는 91년 교수 재임용에 탈락하면서까지 만 3년을 대학재단의 비리와 싸웠던 주인공.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글쓰기 방식에서 전투력을 과시해 주목을 받고 있다.

스스로의 표현대로라면 그것은 '포스트모던한 아줌마식 공부' 다.

거기에서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숨겨져 있었던 여성성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정재서 (이화여대.중문학). 임경순 (포항공대.과학사). 김종성 (부산대.문헌정보학) 교수와 연구개발정보센터의 김현 박사가 참여한 '교과서 없는 시대, 다시 시작하는 공부' 제목의 좌담 또한 이번 기획의 의미를 더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학문이 연구자의 지위 지향적 성격을 갖고 있는 데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게 참석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과연 우리에게서 공부는 무엇이며 그 한계와 문제점을 탈피하는 방안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그 해답은 목표 지향적 공부체계를 향해 자기수양과 소통을 거듭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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