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위급성 첫 공식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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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4일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

반기문 외교부 장관이 4일 내외신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의 북핵 상황은 중대 국면"이라고 공개 선언했다.

반 장관은 '가장 말을 부드럽게 하는 외교관'으로 정평이 나있다. 기자회견에서도 먼저 강하게 발언하지 않는다. '외교적'언사를 늘어놓다가 질문공세가 이어지면 최소한의 메시지를 던지곤 한다.

하지만 이날 회견은 달랐다. 모두 발언에서 이미 '중대국면'이란 단어가 나왔다. 작심하고 준비했다는 얘기다. 외교부 당국자들도 최근 며칠 새 "중대 기로에 섰다"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조만간 재개 전망이 있을지 판가름날 것" 등의 발언을 해왔지만 비공식석상에서 익명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회담 재개를 위한 관련국들의 노력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에서였다.

반면 이날 반 장관은 공개석상에서 북핵 사태의 시급성을 인정하고 나섰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내부적으로는 이미 급류를 타고 있는 마당에 겉으로만 태연한 척할 수 없다는 상황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내 강경파의 대북 압박 및 비난 강도가 날로 높아가고, 이에 대한 북한의 맞대응 수위도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상황에 대한 정부의 당혹감이 묻어 나온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특히 정부는 외국의 주요 언론을 통한 대북 압박작전에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이다. 정부 당국자도 "최근 잇따라 나오는 추측보도의 거의 대부분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라며 "하지만 그런 보도가 협상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을 뛰어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아직 한.미 간 공식 루트에서는 안보리의 '안'자도 나온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미국 측의 강경 분위기를 마냥 못 본 체 할 수만은 없다는 게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반 장관이 북한에 분명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감안한 것이란 분석이다. 반 장관의 대북 경고는 지난달 25일 본사 주최 조찬간담회에서 처음 나온 이후 불과 열흘 만이다. 특히 이날 회견에서는 "무작정" "타당성 없는 주장"이라는 등 매우 직설적인 단어도 사용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 번만 더 상황을 악화시키면 우리도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는 메시지를 행간에 담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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