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살아있다] 10. 요즘은 남는게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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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배추장관' '무장관' '양파장관' …. 서울 가락동시장에서 농산물별로 수급 (需給)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상 (巨商) 들을 일컫는 말이다.

어느 시장이나 있게 마련인 이른바 '오대 (5大)' . 5명의 거상들이 시장 전체를 움직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신들이 취급하는 품목에 관한 한 농림부장관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서울특별시농수산물공사에 따르면 가락시장의 공식적인 오대는 하영웅 (경신상회).김응남 (원남유통).하동진 (하동진청과).박문영 (훼밀리유통).송선길 (태능상회) 로 나타났다.

이들은 지난 한햇동안 농산물 거래금액만 무려 50억원 이상을 취급한 '큰 손' 들이다. 지난해 총 71억원을 거래해 중도매인 실적 1위를 기록한 하영웅 (河永雄.56) 씨.

그는 오대가 아니냐는 질문에 펄쩍 뛴다. "한해 70억원을 거래해 봐야 1% 마진을 붙여 겨우 7천여만원을 남기는 정도죠. 이 돈으로 10명의 직원 월급주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적자도 봅니다. 오대라니요. " 그는 오대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꺼림칙하다.

사실 해방 전후 서울 시민의 먹거리를 공급해오던 서울역 뒤편의 염천교 시장이 용산→가락동으로 옮겨지면서 오대들의 위력은 점차 감소하기 시작했다.

염천교.용산시장 때만 해도 배추.무.마늘.양파 등 대여섯개 주요 품목의 오대들이 움직인 물량이 시장 전체의 30~40%에 이르렀다. 이들은 많게는 10배 가까이 폭리를 취하며 산지 수집부터 판매에 이르는 거래상 전 과정에 개입했다.

산지 (産地)에서 한통에 1백원 하는 배추를 소비자들이 1천원에 사야 할 때면 으레 오대들의 농간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가락시장 관계자들은 "더 이상 오대는 없다" 고 주장한다. 공영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의 탄생과 함께 정부에서 산지 수집상과 중간 도매상의 역할을 분리시켜 그만큼 오대의 취급 규모가 작아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더구나 이들은 판매법인에서 경매를 통해 투명하게 거래해야 되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농산물의 가격과 수급을 조작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가락동시장에서 거래되는 청과물을 보면 연간 약 1조7천억원. 오대의 거래실적을 모두 합해도 3백억원 정도로 시장 전체 거래 금액의 1.76%에 불과한 실정. 그러나 시장 상인들은 "그래도 오대는 있다" 고 말하고 있어 여운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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