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율려학회 창립대회…초대회장에 김지하시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마고성 (麻姑城) 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성이다. 성안의 모든 사람들은 품성이 순정하여 능히 조화를 알고 지유 (地乳) 를 마시므로 혈기가 맑았다. 귀에는 오금 (烏金) 이 있어 천음 (天音) 을 모두 듣고 길을 갈 때는 능히 뛰고 걷고 할 수 있으므로 내왕이 자재하였다. 그 수명은 한이 없다. "

신라 내물왕 때의 충신 박제상 (朴堤上) 이 지었다는 '부도지 (符都誌)' 에 나타난 우리 민족의 개벽신화다. 민족의 신화.상고사를 아득하게 거슬러 올라가는 일련의 지적.예술적 움직임이 문화운동으로서 닻을 올렸다.

율려학회는 4일 오후4시30분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소극장에서 2백여명의 문화.예술인과 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창립대회를 갖고 회장으로 김지하시인을 선임했다.

김지하시인을 비롯, 공연기획자 강준혁.국악가 김영동.화가 김정헌.영화감독 이광모.작곡가 이종구.연극연출가 임진택.문화비평가 정희섭.무용평론가 채희완씨 등은 지난해 8월부터 9회에 걸친 준비모임을 갖고 새로운 인간상과 우주질서를 우리의 고대로부터 탐구하다 이제 적극적 활동과 대중화를 위해 정식 학회로 발족시킨 것이다.

이날 기념강연 '마고를 찾아서' 를 통해 김지하시인은 신시 (神市) 였던 마고성은 사람들이 땅의 젖이 아니라 또다른 생명체인 포도를 따 먹으면서부터 혈육이 탁하게 되고 심기가 혹독해져 하늘의 소리인 율려 (律呂) 를 들을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우리의 신화와 고대사를 경제.문화인류학적으로, 또 역사적.고고학적.미학적.철학적 등 총체적 관점에서 탐구하며 율려를 복본 (複本) 해 새로운 시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우주만물이 두루두루 잘 살 수 있는 문화운동으로 전개하자는 것이다.

1만4천여년전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에 위치했을 마고성을 찾는 중간 기착지로 율려학회는 우선 유목민족 동이족의 우두머리 치우천황과 농경민족의 우두머리인 중국의 황제가 맞붙은 최초의 문명간의 충돌인 탁록대전의 현장인 황하유역을 탐구하게 된다.

치우천황의 후손들이 왜, 어떻게 백두산으로 이동하며 단군의 고조선을 세우게 됐는지를 밝혀 나가겠다는 것이다.

또 마고성 같은 신시에서, 그 신시로의 귀향을 꿈꾸는 단군왕검 시대 우리 인간들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대중들 앞에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총체극 '신시' 를 내년 8.15때 무대에 올리겠다고 밝혔다.

이날 창립대회에 참석한 문학평론가 최원식 ( '창작과비평' 주간.인하대교수) 씨는 "율려운동이 처음에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무엇인지를 몰랐으나 지난 1년간의 탐구로 이제 구체화.정교화 돼 앞으로의 고대사 탐구는 상당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고 밝혔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