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기 왕위전] 조훈현-유창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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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현찰 몇푼 챙기려다 체면만 구기고…

제6보 (72~92) =전보 흑▲로 꼬부린 수는 석점을 잡자는 수였으나 曺9단은 계속 본 척도 하지 않고 있다. 劉9단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자존심으로 따진다면 당장 잡아버려야 한다.

'참고도' 흑1로 잡으면 백2, 4가 선수로 들어 A의 단점이 사라진다.

이 단점을 노리다가 좋던 바둑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지금 와서 현찰 몇 푼 때문에 그걸 포기하자니 더욱 자존심이 상한다.

게다가 백B의 달리기. 마이너스 효과를 무시하고 집만 따져도 겨우 20집짜리다.

바둑에선 초반의 한 수를 10집으로 계산하니까 한 수 20집이면 큰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좌변이 폭풍전야의 상태. 땅은 넓은데 흑백은 서로 대치해 노리고 있으니 선수 하나에 지도가 달라진다.

劉9단은 73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가슴 속은 용광로처럼 끓고 있으나 중앙이 미생임을 생각해 꾹 참은 것이다.

하지만 曺9단의 다음 수를 보라. 曺9단은 74로 그 틈을 가르고 나왔다. 형세도 좋은데 상상을 절하는 초강경수를 들고나온 것이다.

당시는 모두 놀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수의 탁월성과 정당성이 입증됐다. 백들로 이어진 백의 포위망은 단 한치의 빈틈도 없는 철벽이다.

대마가 불사인 것은 포위망의 어딘가 숨쉴 곳이 있기 때문인데 이런 콘크리트 벽 속에선 천하없는 대마도 걸려들면 죽는다. 그러므로 이 부근에서의 백의 권리는 절대적인 것.

劉9단도 현실을 인정하고 한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을 때 82가 연이은 호착. 백의 핍박에 흑은 점점 숨이 막혀온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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