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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수도권 공단 수해현장 르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인천시 서구 오류동 마전공단. 수해와 태풍이 할퀴고 간 4일 하늘은 눈부시게 파랬지만 이곳에 있는 20여 중소기업 임직원들은 하늘을 쳐다볼 엄두를 못냈다.

"IMF체제 이후 경기가 조금씩 나아지나 했는데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단체 휴가 중인 직원들을 불러 밤새 물을 퍼냈지만 역부족이었어요. 10년 흘린 땀이 순간에 날아갔네요. "

사무용 가구 제작업체인 에스파이어 김성연 (金聖淵.35) 사장은 물에 잠겨 못쓰게 된 목재가구를 닦다 말고 긴 한숨을 쉬었다. 폭우.강풍에다 서해 바닷물이 만조때 넘쳐들어오면서 6백여평 공장이 완전히 물에 잠겨 폐허가 되다시피 한 상태.비에 젖어 버려야 할 가구용 목재만 2억여원대. 기계는 얼마나 고장났는지 점검도 못하고 있다.

"내수는 고사하고 수출용 제품도 만들 수 없게 됐어요. 이달 25일 중국에 수출용 샘플을 보내야 하는데…. " 金사장은 "공장을 정상화하는 데 한달 이상 걸리는 데다 당장 원자재를 구입할 자금도 없어 러시아.베트남 등지로 보낼 수출물량을 제때 만들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 이라고 말했다.

하천둑이 무너지며 공장지대인 하봉암동.상패동에 밀집된 섬유.피혁.식품가공업체들이 수해를 입은 동두천 지역의 경우 산업피해만 약 40여개사 1백50억~2백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섬유자재를 임가공해 80% 이상을 미국.유럽 등지로 수출하는 일신산업의 경우 원자재 2억원 상당 (15만야드) 을 포함, 4억~5억원 정도의 피해를 보았다. 연매출이 12억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치명적이다. 지난해 (6억원대)에 이은 2년째 수해다.

8, 9월은 특히 벨벳이나 완구용 천으로 사용되는 벨보아 등의 수출 피크타임인 데다 최근 경기가 살아나면서 수출 주문도 많이 늘어 직원 25명이 공장을 1백% 가동하면서 지난해의 재난에서 벗어나보고자 했지만 또 큰 피해를 본 것.

회사측은 "복구하려면 보름은 걸릴텐데 원자재.기계 피해보다 수출납품 차질에 따른 신뢰 하락이 더 큰 문제" 라고 말했다.

동두천시 하봉암동의 닭가공업체 ㈜마니커. 대지 1만6천평, 건평 2천5백평에 이르는 공장이 침수되며 창고에 보관 중이던 닭고기 재료 2백t이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된 데다 완제품.기계수리비용까지 감안하면 이번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액은 모두 15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한형석 (51) 사장은 "지난해 수해로 25억원의 피해를 본 뒤 주요 기계부품은 보다 높은 위치에 설치하는 등의 예방작업을 해 피해를 조금은 줄일 수 있었지만 IMF체제 이후 회사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2년 연속 수재를 당하니 할 말이 없다" 며 한숨을 지었다.

폭우와 태풍 피해를 본 전국의 중소기업들이 충격을 딛고 복구에 한창이지만 타격이 워낙 커 정상화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특히 수도권의 소규모 공단들은 수마 (水魔)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피해가 컸다.

중소기업청 수해대책 상황실에 따르면 4일 현재 수재를 입은 중소.영세기업은 경기지역 1백3개 업체, 인천지역 24개 업체 등 수도권에서만 총 1백38개 업체. 피해액수는 49억6천만원대이나 앞으로 계속 늘어나 지난해 피해 (4천97개사, 3천1백21억원) 를 웃돌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수해로 인한 생산차질. 현재는 11억원 정도로 집계됐으나 기계가 망가지고 원자재를 구입할 자금이 없어 시간이 갈수록 주문을 맞추지 못해 생산차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피해업체 중 2차, 3차 하청업체가 많아 이들과 거래하는 대기업들도 일부 조업을 중단하거나 늦추는 등 피해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기계와 자재가 물에 잠겨 수천만원대의 피해를 본 전기배전반 주문생산업체인 태일계전 관계자는 "당분간 거래처의 주문을 제때 소화할 수 없어 완제품 업체들도 생산차질이 불가피할 것" 이라고 말했다.

또 연천.파주.가평 등지의 광산 7곳도 큰 침수피해를 보았고 (광업진흥공사 집계) 통신망두절.도로유실 등에 따른 인프라.물류피해도 커 이번 수해가 나라 전체의 경기회복에 상당한 지연요소가 될 전망이다.

중소기업청 지원대책반은 "정부에서 8백억원대의 복구지원예산을 마련한 만큼 피해를 본 중소기업들은 피해상황을 정리, 각 지방청이나 본청 등에 신고하고 빨리 공장 재가동 준비에 힘써달라" 고 당부했다.

인천 = 김종윤.동두천 = 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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