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반성 다음에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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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무총리실 산하 민관합동기구인 정책평가위원회가 정부업무심사평가를 발표, 행정 각부처의 상반기 성적표를 내놓았다.

정부업무평가는 연례행사적 성격이 다분하나 그 목표가 업무의 재점검을 통해 미흡한 부문을 개선하고 국정운영의 효율을 높이자는 것이므로 의미는 각별하다.

정부는 이번 보고서에서 37개 중앙행정기관의 64개 주요 정책과제에 대해 평가결과를 제시했다. 이 가운데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대표적 정책실패사례로 뽑힌 한.일어업협상, 공직자 10대준수사항, 국민연금 확대실시, BK (두뇌한국) 21계획, 화성 씨랜드 화재사고, 검찰 - 경찰 수사권갈등 등 6개 과제다.

모두가 하나같이 정책혼선으로 국민신뢰를 떨어뜨려 현정부에 집권 1년만에 심대한 타격을 입히고 국정수행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 것들이다.

이 점 정부도 정책결정이나 집행과정에서 광범위한 의견수렴이 불충분했음을 인정, 이로 인해 정책이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예컨대 BK21사업의 경우 계획수립과정이 투명치 못해 특혜시비가 나오고 이로 인해 4.19혁명 이후 초유의 교수시위가 벌어지는 등 대학사회에 갈등을 야기한 것은 개탄할 일이었다.

공무원의 경조사까지 일일이 간섭하려 들었던 공직자 10대 준수사항이나 씨랜드 화재사고도 한마디로 탁상행정, 무뇌 (無腦).부패행정의 전형이었다.

정부가 뼈아프게 이를 인정.반성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며 또한 좋은 일이다.

문제는 그러나 반성이 반성만으로 그쳐선 안된다는 점이다. 반성을 딛고 넘는 개선과 발전이 있어야 한다.

불행한 일은 지금 이 시간에도 비슷한 일이 행정 각부처에서 버젓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린벨트제도 개선만 해도 공청회마다 지역주민의 반발로 제대로 열린 적이 없고 제도개선협의회 위원 중에는 건설교통부의 일방통행적 진행에 불만을 품고 사퇴자가 잇따랐다.

충분한 의견수렴과는 거리가 먼 밀어붙이기식 행정에 벌써부터 어떤 결과를 빚을지 걱정되고 있다. 단순사고라고 치부하고 싶겠지만 씨랜드 화재사건 뒤 보름도 못돼 정부청사에서 불이 났으며 또한 국민연금 확대실시도 봉급자와 자영자간의 보험료 불균형문제로 떠들썩했으나 아직 분명한 해결의 가닥을 잡지 못했다.

행정이 이렇게 된 원인은 국정평가가 공직사회에 제대로 침투되지 못하고 겉도는 데도 크다. 정책실패를 '남의 일 보듯' 하는 자세여선 나아질 일이 없는 것이다. 정책실패에는 철저한 책임이 뒤따라야 하나 미온적이긴 여전하다.

이번 평가에서도 각부처 내부감찰로 비리가 드러난 공무원 중 징계조치를 받은 경우는 겨우 적발건수의 7.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온정주의속에서야 반성도, 정책 바로세우기도 과연 제대로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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