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JP 몽니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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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종필 (金鍾泌) 총리는 역시 노련한 정치인의 풍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여권의 신당 창당 합의설과 관련해 20일 내내 몽니를 부렸던 金총리는 21일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 및 박태준 (朴泰俊) 자민련총재와의 회동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거침없고 자신있는 화법으로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

내각제개헌 유보에 이어 이른바 '2여+α' 의 신당 창당이라는 金대통령의 정국운영 구상이 착실하게 현실화될 것으로 보였던 전망을 한순간에 일단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엉망이 됐다고 보이도록 만든 그것이 역설적으로 JP의 '부활' 을 담보하는 것이자 신당 창당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보면 틀린 진단이 될까. JP는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통합은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그는 기자회견의 일문일답에서 " (합당문제는) 전당대회를 열어 당의사가 결정되기 전엔 안된다" 고 말해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놓았다. 이는 양당합당의 형태는 아니지만 8인위에서 '정치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정계개편안, 즉 신당 창당안을 마련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문제는 JP가 왜 이 시점에 다시 몽니를 부렸느냐는 데 있다. 그는 20일 밤 자민련 총재단회의에서 金대통령이 통합안을 제기한 데 대해 "당을 통해 신중히 생각해볼 문제라고 답변했다" 고 말했다.

본인은 완곡한 거부의사였다고 해명했지만 듣기에 따라선 긍정적인 반응이라고 해석될 여지가 없지도 않았던 것 같다. JP는 이 자리에서 또 DJ와 내각제 유보를 합의한 바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던 입장을 뒤엎고 이를 시인했다.

이런 점으로 미뤄보면 본인은 자신의 입장을 왜곡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지만 사실상 통합에 양해했다고 볼 여지는 크다. 곧 이어 DJP신당 합의설이 널리 퍼진 것도 이런 까닭에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총리직 사퇴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몽니를 부린 것은 고도의 정치적 계산의 산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추측컨대 그는 내각제 유보 합의가 자민련내의 정상적인 논의구조를 통해 이뤄지는 수순을 밟기를 바랐을 것 같다. 그래야 뒤탈이 적어지고 명분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수순을 밟기도 전에 세상에 알려져 자민련 충청권의원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충청권 여론의 역풍을 받게 됐다. 그러면서 "역시 JP는 영원한 2인자" 라는 세간의 비난을 받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 다시 '2여+α' 라는 통합합의설이 보도되자 金총리의 입장은 더욱 큰 곤경에 빠졌다. 본인은 그런 합의가 없었다고 강력히 부인했지만 朴총재와 국민회의측은 이를 확인하고 기정사실로 만들어갔다.

이번에 그대로 이 상황을 용인한다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상실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가졌을 것이다. 내각제 유보 합의 파문과 관련, 충청권에서 DJ에게 속았다는 여론이 비등했는데 이번마저 당했다는 인식이 퍼진다면 JP이미지는 더 한층 떨어질 것이라는 절박한 현실인식이라는 얘기다.

金총리로서는 이런 사태를 어떤 경우든 막아야 했을 것이고, 그것이 몽니의 배경이자 정치현안을 풀어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렇게 볼 때 金총리가 회견에서 내각제 유보와 관련해 상황논리를 펴면서 "수많은 밤을 고뇌한 끝에 유보결정을 내렸다" 고 말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통합불가 발언과 함께 JP의 강력한 메시지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내각제 유보가 DJ의 요구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대승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처리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당 창당도 자신이 주도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될 수 없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런 신호는 여러 곳을 동시에 겨냥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령 충청권을 향해 "그러면 그렇지. JP가 누구야" 라는 믿음을 회복하려는 신호일 수도 있고 자민련의원들의 섣부른 반발 움직임을 차단하는 효과를 노린 것일 수도 있다.

동시에 자신이 틀면 무엇 하나 제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국민회의는 물론 朴총재에게 입력시키는 효용도 생각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JP는 현재 자신의 위치를 즐거워할 만도 하다. 사실상 공동정권 오너로 권한을 누릴 건 다 누리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독특한 위치 아닌가.

그렇다면 JP의 몽니는 내각제 유보 이후를 대비한 자신의 새로운 위치설정에 가장 초점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수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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