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대우와 당국의 동상이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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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9일 대우그룹의 발표는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음에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고 있다.

뭔가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발표 내용에 대한 대우와 정부의 해석에 미묘하지만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선 담보물의 성격에 대한 해석부터 차이가 있다.

대우측은 구조조정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채권단이 담보 주식과 부동산 등을 처분할 수 있도록 위임장을 써준다고 발표했다.

대신 자구계획이 성공하면 담보물은 되찾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금융감독위원회는 채권단이 매달 대우의 자구계획 이행실적을 점검해 차질이 있으면 곧장 담보 주식 처분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여차하면 대우 계열사들을 찢어서 팔겠다는 압박이 강하게 담겨 있다.

김우중 (金宇中) 회장의 퇴진 시점도 마찬가지다.

대우는 "자동차부문 정상화 이후" 라고 다소 막연하게 표현하고 있으나 금감위는 "1차 6개월, 최종 2년" 이라는 식으로 매정하게 못박고 있다.

연말까지 약속한 계열사 매각과 부채비율 축소 등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1차 관문이고, 이를 통과해 자동차부문 정상화에 성공한다 해도 2년 후면 경영권은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우증권의 처분 여부도 분명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대우쪽의 해석에는 일단 6개월의 시간은 벌었으며, 자구계획만 성공하면 무역과 자동차 전문 기업으로 그룹 간판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짙게 깔려 있다.

金회장 퇴진과 대우그룹의 사실상 해체에 비중을 두고 있는 당국과는 동상이몽 (同床異夢)에 가까운 거리가 있다.

문제는 이같은 차이가 대우 발표의 신뢰성에 흠집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증권시장과 외국에서 나타나는 관망 또는 실망의 반응은 대우와 당국이 만들어낸 불투명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안개가 빨리 걷혀야 대우의 발표가 신뢰를 얻고 나아가 한국경제가 신뢰와 안정을 함께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를 풀 책임과 방법은 대우와 당국 양측에 있다.

당국은 우선 대우사태를 '실패한 재벌 총수 퇴진' 과 '재벌 해체' 라는 재벌정책의 성공사례로 몰고 가려는 욕심을 자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우중 = 대우' 라는 등식이 깨지면서 국내외에서 발생할 파장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金회장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스스로 표현했듯 결자해지 (結者解之) 를 위해서라도 약속한 구조조정을 최선을 다해 이행해야만 문제가 근본적으로 풀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32년에 걸친 대우 성장사에서 여러차례 실패의 위기를 겪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89년에도 옥포조선소에서 1년7개월을 먹고 자며 절치부심, 위기에 처한 대우조선을 살려냈다.

당시 옥포만의 바닷바람 소리를 들으며 써낸 책이 바로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 다.

그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희생' 을 강조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희생인지도 모른다.

나를 버려 대우를 살린다는 희생의 자세로 마지막 승부를 치러낸 金회장이 내후년께 "세상은 넓고…" 의 속편을 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손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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