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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의 흥행 주역 김인권에 대해 미처 몰랐던 몇 가지

중앙일보

입력

여성중앙800만 관객을 넘긴 영화 ‘해운대’에서 철없는 동네 건달을 능청스럽게 연기했던 김인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착각할지도 모른다. ‘인생이 개그’일 것 같은 재미있는 남자라고. 하지만 그와 대면하고 10분 후 의외의 진지함을 발견했고, 30분이 흐른 뒤에는 사랑 표현이 서툰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한 성격을 엿볼 수 있었고, 1시간이 흐른 뒤에는 화면 밖 고단한 삶에서 일찍 철이 든 남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취재_민은실 기자 사진_조병각(studio lamp) 장소 협조_H&G(02-546-6413)

영화 ‘해운대’에서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백수 동춘 역으로 분한 김인권. 자신의 노모에게 철딱서니 없는 행동을 하기 일쑤고, 노상 술을 입에 달고 살며 어린 조카를 꼬드겨 앵벌이까지 시키는 한심스러운 캐릭터를 정말 코믹하게 풀어냈다. 그는 ‘감초 연기의 달인’이라는 애칭이 무색하지 않게 동춘의 성장 과정을 맛깔스럽게 보여줬다.

“연기를 하다보니까 저와 동춘이가 많이 닮았더라고요. 고향이 부산인 것도 그렇고,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살갑게 못한 것도 그렇고요.”

그의 눈을 통해 줄곧 떨어져 지내다 고2 때 뇌졸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쓰나미에 휩쓸려 사망한 어머니의 영정을 안고 통곡하는 장면이 더욱 애절하게 와 닿는 것도 아픈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한 눈물이었기 때문일까.

“진짜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제가 출연한 작품이 개봉을 할 때마다 ‘어머니가 살아계셔서 이 작품을 봐줬으면…’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그것과 비슷한 기분이랄까.”

영화 ‘신부수업’ ‘말죽거리 잔혹사’ ‘조폭마누라’,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 등 작품마다 코믹한 모습만 보여줬던 그에게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 아니, 인터뷰를 하는 내내 배우 김인권은 양파 껍질을 까듯 하나, 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교 1등 수재의 10년 무명 배우 탈출기… 우물물을 길어다 먹을 만큼 어려웠던 어린 시절, 가난보다 더 힘들었던 건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부모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시간들이었을 게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 부모의 부재라는 결핍감을 채워준 것은 오로지 무대 위에서 보내는 시간들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교회에서 성극부 활동을 하며 연출과 연기 공부를 한 그는 연극영화과에 들어가기 위해 학과 공부도 열심히 해 고3 마지막 수능시험에서 전국 0.8% 내의 성적으로 전교 1등을 한 적도 있다.

“무대 위에서는 여러 가지 인생을 살아볼 수 있잖아요. 그게 재미있어서 직접 시나리오도 쓰고, 연출도 했는데 너무 독불장군 식으로 하다 보니까 배우 하겠다는 친구가 없었어요. 그때 이 친구(매니저)가 캐스팅을 하고, 의견을 조율해 주면서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줬죠.”

한때 연기자를 꿈꿨던 17년 지기는 지금 그의 든든한 매니저이자 가감 없이 조언을 해주는 친구로 동고동락하고 있다. 스스로에 대해 ‘내성적인 연기자’라고 말하는 그의 유머 감각과 거친 내면의 끼를 끄집어내주는 ‘연기 선생’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저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제가 무척 코믹한 줄 안다는 거예요. 실은 낯가림도 심한 데다 유머 감각은 젬병이거든요. 한번은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했다가 다 편집된 적도 있어요. 코믹 연기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지만, 버라이어티 쇼는 순발력 있게 재치 있는 농담을 해야 하는데 ‘슛’만 들어가면 주눅이 들고, 기가 쫙 빠지더라고요. 얼어가지고 말도 안 나오고. 지금은 아예 섭외조차 안 들어와요(웃음).”

코믹 연기자와 코믹한 남자 사이에는 분명 경계가 있어 보였다. 그제야 “난 진지하게 연기하는데 사람들이 웃는다”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일부러 제가 웃기려고 더 오버해서 연기하는 줄 알지만 전혀 안 그래요. 저는 연기할 때 캐릭터가 처한 상황을 항상 진지하게 받아들이거든요. 오히려 사람들은 그 진지함을 보고 리얼리티를 느끼는 것 같아요.”

광안대교에서 컨테이너가 거꾸로 처박히는 장면에서 동춘이의 겁에 질 린 표정을 보고 관객들은 하나같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비열한 캐릭터가 공포의 대상 앞에서 약해지는 모습을 완벽하게 희화화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진지함에서 묻어나는 희극 연기’가 아닐까.

“어릴 때부터 짐 캐리, 성룡을 좋아했어요. 웃음은 배우한테 큰 무기인 것 같아요. 웃음이 다는 아니지만, 웃음까지 있는 배우, 배우로서 코미디언이 되는 게 최고의 경지라고 보거든요. 웃음은 주제를 건조하지 않게 전달하고, 감동까지 주니까요.” 실제로는 전혀 코믹하지 않다는 그는 ‘희극 배우’가 되기 위해 ‘해운대’ 를 촬영하는 3~4개월 동안 일부러 동춘 이처럼 살았다. 낮술 마시고서 어슬렁거리면서 동네 산이라는 산은 다 가봤고, 노숙자처럼 ‘추리닝’ 입은 채로 전봇대 밑에서 잠들기도 했다.

“평소 성격처럼 점잔 빼고 있다가 ‘슛’ 들어갈 때 망나니 건달로 변하는 것도 어색하잖아요. 그동안 동춘이로 살면서 부산 사투리로 욕지거리도 퍼붓고, 술에 찌들어 정신 줄 놓고 살다가 일상으로 돌아오니까 좀 답답하기도 해요(웃음).”

의외로 바른 생활 사나이인 그에게 동춘이의 삶은 ‘소심한 일탈’이었다.

“얼마 전에 상경이 형(배우 김상경)을 만났는데 저보고 ‘평소에 못하던 걸 연기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변태’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해운대’ 덕분에 일탈뿐 아니라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무뚝뚝한 성격도 조금은 달콤하게 변했단다. 그건 윤제균 감독 덕분이다.

“감독님이 동춘이에 대한 애착이 컸어요. 연기 지도와 감정 설명까지 일일이 다 해주셨죠. 믿어주고,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소주잔 기울이며 인생 상담도 해주고… 이제는 아빠 같아요. 감독님이 워낙 다정다감한 성격이라 문자를 보낼 때 하트를 날리세요. 처음에는 닭살스러워서 저는 웃음(^^) 표시만 보냈는데, 요즘에는 제가 하나라도 하트를 더 보태서 보낸다니까요. 정말 변태가 된 것 같아요.”

첫사랑이자 20년 지기 아내와의 결혼 생활… 촬영장에 연기자로서의 그의 가능성을 믿어준 윤제균 감독이 있다면, 일상에서는 그의 인생을 무한 지지해 주는 아내가 있기에 그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철마다 바뀌는 애인과의 연애 문제 등으로 슬슬 싱글 라이프가 지겨워지는 서른두 살 남자들과는 달리 그는 일찍이 가정을 꾸렸다. 그것도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첫사랑과 행복한 결실을 맺은 것이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어려서부터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했던 게 평생 치유되지 않는 상처인 것 같아요. 아내는 제 상처를 보듬어주고, 조용히 지켜준 친구예요.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전 이 자리에 없을 거예요.”

아내는 그와 동갑내기로 초등학교 동창, 대학(동국대) 동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알고 지낸 시간은 20년이 넘는다. 아내는 결혼 전 대기업에 근무했었고, 결혼 후 그가 군 복무하는 동안 딸을 출산해 얼마 전 네 살이 되었다. 두 사람은 그가 입대하기 전, 스물여섯 살 때 경기도의 한 교회에서 조용히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전에는 함께 오디션을 보러 다녔고, 지금은 냉철하게 모니터링을 해주며 연기자 남편을 살뜰하게 내조하는 1등 아내다.

“아내가 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죠. 더 좋은 작품으로 아내한테 조금씩 성숙하는 연기자의 모습을 보여주고도 싶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아내는 제가 무명일 때나 몇 개월 동안 합숙 촬영을 해야 하는 요즘이나 한 번도 바가지를 긁은 적이 없어요. 무명 시절에는 늘 주머니에 용돈을 찔러주며 힘내라고 다독거려줬고, 바쁜 요즘은 건강을 챙겨주느라 여념이 없어요. 아내는 제 인생에 로또인 것 같아요.”

남들보다 일찍 자유로운 싱글 라이프를 접고, 가정을 꾸린 것,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것이 분명 그의 인생에 플러스 요인이 된 듯하다. 그래도 가끔은 가장이라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어깨를 무겁게 하지는 않을까.

“애인과 남편이기만 할 때는 몰랐는데, 아빠가 되고 나니까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더라고요. 더욱이 군대에 있을 때 아빠가 됐잖아요. 그러다보니 가족의 소중함이 더 절실히 가다왔어요. 결혼 전에는 단거리 선수 같았다며 아이 아빠가 되고 나서는 장거리 선수가 된 느낌이랄까? 부담감보다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책임감 때문에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게 돼요.”

미혼이요? 벌써 딸이 둘이에요…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외동아들이기 때문일까?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타는 그는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정서적인 결핍과 상처를 자녀들에게만큼은 느끼게 하고 싶지 않기에 그의 딸 사랑은 끔찍하다.

“큰딸이 네 살이고, 둘째 딸이 한 살이에요. 작품 할 때는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화상 통화를 많이 하고, 같이 있을 때 밀도 있게 놀아주려고 해요. 아이랑 놀아준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저도 진이 빠질 때까지 재미있게 놀아요.”

그의 감성 교육은 조용히 집 안에서 음악을 들려주고,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책 밖의 세상을 직접 보고, 뛰고, 느낄 수 있도록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운동화를 질끈 매고 외출을 한다.

“큰딸이랑 자전거도 타고, 동네 놀이터도 코스별로 돌아요. 퐁퐁 놀이터, 모래 놀이터…. 날씨 좋을 때는 동네에 있는 무료 수영장에도 가고, 동물원에 가서 서로 보고 싶은 동물부터 보겠다고 다투기도 해요.”

아빠로서의 권위보다는 ‘친구 같은 아빠’로 지내는 것이 즐겁다는 김인권. 그는 집에 있을 때는 딸들과 역할극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도깨비 놀이, 병원 놀이, 선생님 놀이 등 연기자의 끼를 살려 아이와 역할극을 하며 대화를 나누다보면 아이의 표현 능력이 풍부해지는 걸 새록새록 느낀단다. 이것이 바로 ‘김인권식 감성 교육’이라고.

“딸에게 재산을 많이 물려주는 것보다 엄마, 아빠와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을 남겨주는 게 가장 큰 선물인 것 같아요.”

평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겪었고, 연기자의 길도 순탄치는 않았지만 자신을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가족이 있기에 외롭지 않았다는 그에게 가족은 존재 자체만으로 연기자 김인권이 진보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여성중앙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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