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이산상봉과 쌀 지원 연계 적극 검토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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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등 외국 유력신문들은 29일자 1면에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장면 사진을 크게 실었다. 그만큼 이산가족의 재회는 전 세계 누구라도 찡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비극적 휴먼 드라마다. 이산가족이 겪는 고통은 가장 원초적인 것이다. 추석이나 설에 전 인구의 절반이 귀성길에 오르는 나라에서 이산가족들은 갈 수 없는 고향과 만날 수 없는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짓는다. 회한, 그리움, 원망, 초조감, 무기력감 등 형언하기 어려운 절망감이 가슴을 저민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북쪽에 있는 가족을 만나겠다고 신청한 실향민은 무려 12만7726명. 그중 3분의 1은 신청만 해놓곤 숨졌다. 남은 생존자는 8만6531명. 이들 가운데 1985년 한 차례, 2000~2007년 매년 두 차례, 이번 한 차례 등 모두 18번에 걸친 상봉행사를 통해 북쪽 가족을 직접 만난 사람은 1750여 명에 불과하다. 또 화상상봉을 통해 만난 사람이 557가족이다. 모두 합쳐야 희망자 100명 가운데 2명꼴도 안 된다. 지금 같은 찔끔 상봉이 이어진다면 8만여 명의 상봉 희망자가 북쪽 가족을 만날 확률은 거기에 훨씬 못 미칠 전망이다. 이들 중 80대 이상이 3만2000여 명, 70대가 3만3000여 명이기 때문이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애간장이 탄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처럼 지지부진한 원인은 전적으로 북한 당국에 있다. 북쪽 사회에서 월남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상당수가 정치사상적으로 ‘성분이 나쁜’ 계층이다. 이들이 남쪽 가족을 만나 받는 선물은 북쪽 주민들로선 평생 만져보기 어려운 고액인 경우가 많다. 못살고 감시대상이던 사람들이 남쪽 가족을 만난 뒤부터 ‘떵떵거리며’ 사는 모습이 북한 당국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체제 부담인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은 상봉 숫자를 줄이려 해왔다. 과거 이산가족 상봉이 사실상 쌀·비료 지원과 연계돼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입장에선 대가를 주지 않고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홍양호 통일부 차관은 식량지원과 상봉을 “연계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을 특정 사안과 연계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산가족 문제는 인륜·천륜의 문제다. 통상의 대북정책과 분리해 다룰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 정부가 이산가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고 싶다.

특단의 파격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시간이 너무 없다. 우리는 정부가 식량지원 연계 불가 방침을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사 1건당 쌀 ○○t’ 식으로 보다 구체적으로 연계해 제시하는 것도 한 방안일 수 있다. 과거 서독 정부가 동독의 정치범을 ‘돈과 맞바꾼’ 사례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상봉행사는 연중 이뤄져야 하며 상봉 인원도 대폭 늘려야 한다. 1년 1000~2000명이 만난다 해도 10년 뒤엔 상봉 희망자가 거의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5명 중 3~4명은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채 말이다. 죽기 전 혈육의 손이라도 잡고 싶은 피맺힌 소망. 정치도, 경제도, 민족도, 핵문제도 뛰어넘는 인륜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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