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는 스페인 제국의 비상과 추락을 모두 경험한 ‘시대의 아들’이었다.
스페인은 카를 5세(재위 1519~1556) 치세에 아메리카에서 거대한 제국을 건설해 막대한 부를 얻어 번영을 누렸다. 그것은 갑작스럽고도 놀라운 변화였다. 스페인 사람들은 신이 그들을 돕고 있다고 느꼈고, 오직 그들만이 신의 은총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번영은 오래가지 않았다. 카를의 뒤를 이은 펠리페 2세(재위 1556~1598)는 시기심 많고 하잘것없는 인물이었다. 스페인의 쇠퇴는 처음에는 분명히 나타나지 않았다.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스페인 해군을 주축으로 한 기독교 함대가 투르크에 대승을 거뒀을 때는 카를 5세 시대의 번영이 다시 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꺼져가는 불이 마지막 불꽃을 크게 피운 것에 불과했다.
세르반테스는 영웅시대의 마지막 황혼기를 승승장구한 인물로, 저 위대한 승리의 전쟁 레판토 해전에 출전한 전쟁 영웅이었다. 그는 이 전쟁에서 총에 맞아 왼쪽 팔을 잃었다. 귀국하던 중 알제리의 해적들에게 나포되어 5년 넘도록 갤리선에서 노를 젓는 노예 신세가 되었지만, 이 시기에도 동료 포로들의 탈출을 돕는 등 용맹을 잃지 않았다. 1580년 포로 상태에서 풀려나 펠리페 2세의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세월은 변했다. 카를 5세의 영웅적이고 기사도적인 시대는 사라지고 권태와 환멸만이 가득했다.
소설의 공동 주인공인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영웅적 ‘가상세계’와 환멸의 ‘현실세계’를 각각 대표하는 인물이다. 16세기 중반과 17세기 초 스페인의 이중성을 구현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르반테스는 완벽한 ‘시대의 아들’이요, 자기 시대의 기록자였다. 세르반테스의 문학은 위대하다. 하지만 겨우 한 세기 전성기를 누리다 사치·낭비와 무능한 리더십으로 몰락한 스페인 제국은 우리에게 반면교사로 다가온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