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지구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7면

68억 명이 사는 이 세계가 만일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 어떨까. 주민 중 52명은 여자, 48명은 남자다. 61명은 아시아인, 13명은 아프리카인, 13명은 남북 아메리카인, 12명은 유럽인, 나머지 1명은 남태평양 출신이다. 이들 중 20명은 영양 실조에 시달리는데 15명은 비만으로 고민한다. 20명이 전체 에너지의 80%를 펑펑 써대는 반면 80명은 남은 20%를 나눠 써야 한다.

2000년대 초 전 세계 네티즌들이 e-메일로 열심히 주고받던 글의 일부다. 미국 환경학자 도넬라 메도스가 1990년 발표한 ‘지구촌 현황 보고’가 원전이다. 주민 수를 1000명으로 설정한 그녀의 글엔 환경·안보 등 골칫거리들이 좀 더 상세히 담겨 있다. ‘이 마을엔 가공할 핵무기가 있는데 겨우 100명이 관리한다. 나머지 900명은 그 100명이 안 싸우고 잘 지낼지, 설사 그렇다 해도 부주의로 핵무기를 쏴버리진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메도스는 72년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란 책으로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다국적 싱크탱크 ‘로마 클럽’의 일원이다. 이 책은 지구온난화, 물 부족 등을 언급하며 “경제 성장을 억제하지 않으면 21세기 후반엔 천연자원이 고갈되고 인류와 지구는 파멸을 맞을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그럼에도 각국은 앞다퉈 경제 성장에 매진했고 지난주 ‘지구촌 반상회’라 할 유엔 총회와 ‘동네 유지 모임’인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선 그 후유증의 해법을 싸고 해묵은 신경전이 재연됐다.

개도국들은 그동안 선진국들이 자원을 남용해온 탓이라며 몰아세웠고, 선진국들은 최근 급성장한 개도국들 책임도 만만치 않다고 우겨왔다. 지난해 식량위기 땐 “인도·중국의 중산층이 고기·치즈 등을 많이 먹어댄 탓” “뚱보 미국인들이 다이어트만 해도 기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며 양측 간에 유치한 감정싸움이 불붙기도 했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 지구는 점점 더 골병이 들고 있다. “모든 세계인이 미국인처럼 살려고 한다면 지구가 두세 개는 더 있어야 할 것”이란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의 경고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지구는 단 하나뿐이니 미국인도, 인도인·중국인·한국인도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대체 잘사는 나라, 못사는 나라로 편 가르기가 무슨 소용일까. 다들 한마을 주민이고 운명 공동체인데.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