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랜드 비리'저항 화성군 전복지계장 비망록 남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진입도로가 좁아 씨랜드 청소년 수련의 집은 인허가를 내 줄 수 없는데 강호정 (姜鎬正.47.구속) 사회복지과장은 왜 무조건 허가를 내주라는 것일까. 정말 미치겠다. 왜 직원들 앞에서 서류를 내던지며 망신까지 줄까" "차라리 과장이라는 제도가 없어지면 어떨까" "姜과장과 업자는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화성 씨랜드 청소년 수련의 집 화재참사와 관련,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고 있는 경기도 화성군청 전 부녀복지계장 이장덕 (李長德.39.여.현 민원계장) 씨가 98년초 비망록 (업무일지)에 써놓았던 절절한 토로다.

그는 씨랜드 (대표 朴在天) 측의 금품.향응 공세, 협박과 상사의 부당한 압력에 시달리다 못해 자원해서 자리까지 바꿨던 것으로 밝혀졌다.

5일 경찰에 입수된 李씨의 비망록에는 평범한 공무원이 업자와 문제 있는 상사 사이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한국이 올바른 공직자 생활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사회인가를 희화적으로 보여주는 한 토막이다.

경찰조사결과 李씨는 퇴근길에 괴청년들로부터 "군수도 허가를 내준다고 했는데 네가 뭔데 가로막느냐" 는 협박을 받고 아이들을 친척집으로 피신시키기까지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李씨는 姜과장이 朴대표로부터 전해받은 배 상자 속의 50만원짜리 봉투를 억지로 전달받고 朴씨의 은행계좌를 확인, 즉시 송금까지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때 비망록에 "굶어 죽어도 그런 돈은 받기 싫다" 고 썼다.

李씨에게 압력을 넣은 姜과장조차 "李씨는 로비가 안먹히는 사람이다. 업자들이 그 사람과 밥 한끼 먹게 연결해 달라고 매달렸으나 무위로 끝났다" 고 말했다.

金씨가 화성군 부녀복지계장으로 발령받은 것은 97년 7월. 여성 공무원들이 선호하는 '좋은' 자리였으나 李씨는 이 진통 끝에 지난해 10월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민원계장으로 자원해 이동했다.

화성 출신인 李씨는 공무원인 남편 (43) 과 1남2녀를 두고 있다.

화성 = 정찬민.손민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