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 ‘성공 방정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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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호 34면

또다시 인사청문회의 계절이다. 호통치는 의원님들과 진땀 흘리며 방어하는 고위직 후보자 간의 설전이 보기에도 괴롭다. 메뉴도 매번 대동소이하다. 위장 전입, 세금 탈루, 병역 문제 그리고 논문표절….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능력과 자질·정책 못지않게 도덕적 결격사유를 찾아내는 데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획일적 잣대를, 그것도 폭력적으로 들이대는 것은 문제가 있다. 더구나 정권과 정략에 따라 합격·불합격이 좌우되는 측면이 다분하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은 커진다. 후보자는 만신창이 되고 국민은 정나미 떨어지는 청문회, 좀 개선할 방안이 없을까?

먼저 획일적 잣대에 대한 문제를 살펴보자. 예컨대 위장 전입의 딱지가 붙더라도 그 사정이 다를 수 있다. 부동산 개발 정보에 밝아 시세차익을 노린 위장 전입과 무주택자 신세를 면하기 위해 주소지를 옮겨 아파트 한 채를 분양받은 경우는 분명히 다르다. 자녀를 좀 더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주소지를 옮기는 경우는 부동산 투기용과는 죄질이 다르다. 자녀의 이중 국적과 병역 문제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나서서 멀쩡한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은 철면피한 처사도 있지만 남에게 밝히기 어려운 개인적 사정도 있을 수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손상하면서 병역 문제를 따지면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 논문 표절 및 연구 윤리의 이슈는 학계의 엄밀한 검증을 요하는 사안이다. 비전문가들이 모여 이러쿵저러쿵 판단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획일적이며 구체성이 결여된 잣대로 마녀사냥 식으로 몰아세운다면 특정 개인에게 지울 수 없는 상흔을 줄 수 있다.

후보자가 맡을 직책의 성격에 따라 도덕적 잣대의 내용과 수준도 달라질 수 있다.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 전입은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게는 치명적이다. 그러나 만약 기획재정 장관 후보라면 문제는 제기하되 그를 도덕적 파탄자로까지 몰 필요는 없다. 도덕적 잣대 하나로 우리나라의 온갖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없다. 일괄적인 잣대를 무차별적으로 들이댈 때 능력 있는 인사들이 배제될 수 있다.

특히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2000년 이전의 사안들에 대해선 좀 더 너그러울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과오를 인정하는 양심이다. 과거의 잘못을 먼저 자백하는 인사에게는 ‘정직의 가산점’을 주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다고 도덕적 기준을 무조건 완화하자는 건 아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인사가 고위 공직을 맡길 바란다. 그러나 개발시대의 원죄에서 자유로운 인사가 그리 많지 않음을, 우리는 지난 10년간의 인사청문회에서 수없이 확인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도덕적 기준의 ‘하한선’을 분명히 긋는 일일 것이다. 그 하한선은 구체적이어야 하며 직책이나 직급에 따라 차등을 두는 게 합리적일 수 있다.

예컨대 건설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위장 전입 경력, 교육부 장관의 논문 표절 의혹 같은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렵사리 합의된 기준이 상황에 따라 흔들려선 안 될 것이다. 도덕성의 하한선이 명확해지면 결격사유가 분명한 후보는 공직에 나서지 않을 것이고, 지금 같은 소모적인 논쟁과 불신도 줄어들 것이다.

법과 도덕의 잣대는 시대마다 차이가 있다. 역사상 어떤 위인이라도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할 수는 없었다. 성숙된 시민사회라면 인간의 불완전성을 제도적으로 보완해 나가면서 사회적인 합의 아래 더 나은 사회를 모색할 것이다. 끝없는 도덕성 논쟁 속에서 언어 폭력과 몸 싸움을 불사하는 걸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예수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 던지라’고 했는데 우리 사회에선 돌이 너무 많이 날아다니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곧 성한 사람이 없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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