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교육개혁] 10. '뿌리깊은 나무'로 키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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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내 교육의 질 (質) 평가에서 2위를 차지한 라이스대학은 공부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학교 3위이기도 하다.

어쩌다 맞이하는 '13일의 금요일' 은 해방의 날. 평소 워낙 공부 부담이 많다 보니 그 발산도 볼 만하다.

얼굴에 면도 크림만 바른 채 나체로 뛰어다니고, 옷을 입고 풀장에 뛰어드는 학생들로 캠퍼스는 난장판으로 변한다.

신혼 초 이 대학에 유학했던 김모 (39) 교수는 "4년 동안 공부 스트레스 때문에 부부생활을 거의 하지 못했다" 고 털어놓았다.

캠퍼스 바로 앞의 정신과 병원에는 스트레스를 상담하려는 학생들로 항상 만원이다.

노스캐롤라이나대가 있는 인구 4만5천명의 채플힐시는 대학생이 2만4천명을 차지하는 전형적인 대학도시. 도심을 관통하는 이스트 프랭클린 스트리트에 술집은 불과 세곳. 그나마 오후 9시면 문을 닫는다.

학생들이 독서실처럼 이용하는 카페가 네곳이 있고 나머지는 교회.우체국.책방.복사문구점이 눈에 띌 뿐이다.

우리 대학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당구장이나 오락실.비디오방.여관.미용실은 찾을 수 없다.

저널리즘 스쿨의 토머스 바워즈 부학장은 "공부 이외에 다른 데 눈을 돌릴 수 없게 분위기가 차분하고 안정돼 있다" 고 말했다.

미국 대학들에는 학문적 기초 없이는 응용도 불가능하다는 공감대가 넓고 깊게 깔려 있다.

필사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배겨낼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놓고 있다.

한 과목을 이수하려면 분기별로 4개의 리포트와 중간.기말고사 2~4차례는 기본이다.

매주 초 퀴즈식 테스트가 실시되고 확실한 이유없이 2~3차례 결석하면 아예 잘린다.

여기에다 문답식 강의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교수가 지정하는 매주 3권 이상의 참고도서를 읽어내야 한다.

혹독한 교육 때문에 미 쿠퍼 유니언대 학생들은 "예습량을 줄여달라" 고 시위를 벌일 정도. 대학측은 학문 연구의 마라톤에서 끝까지 견뎌낼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유독 체력단련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교육의 저력은 한국의 고3 수험기간을 능가하는 강도 높은 대학교육을 통해 다져지고 있다.

고교 때까지는 세계 학력평가에서 늘 하위를 맴돌던 미국이 대학졸업생 평가에서는 예외없이 톱 랭킹을 휩쓰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미 인문과학의 전당으로 꼽히는 애머스트대학은 대학만 있고 대학원은 없다.

학문적 기초를 단단히 다진 뒤 자신에게 맞는 전공을 찾으면 그 분야 최고의 대학원을 찾아 떠나라는 게 이 대학의 원칙이다.

이 대학 신입생은 1년만에 10%가 캠퍼스에서 쫓겨난다.

4년만에 졸업할 확률은 50%를 밑돈다.

졸업에도 논문제출과 함께 3시간에 걸친 '죽음의 관문' 이 기다리고 있다.

4명의 교수 앞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밑바닥까지 보여주어야 한다.

애머스트대 스테이시 슈마이텔 (37) 홍보실장은 "기초가 튼튼해야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며 "우리는 전문가보다 제너럴리스트를 지향한다" 고 말했다.

이런 덕분에 학생수 1천6백명의 초미니대학이지만 역대 18명의 미 중앙정보국 (CIA) 국장 가운데 3명이 애머스트대 출신이다.

본토 반환 2주년을 맞는 홍콩에는 '우질 (優質) 교육기금' 이란 게 있다.

50억 홍콩달러 (약 8천억원) 로 출발, 경제위기 속에서도 유일하게 60억 홍콩달러로 늘어난 기금이다.

전적으로 영어교육에 사용되는 이 기금은 중국에 귀속돼도 영국식 영어의 근본을 잃지 않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홍콩의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이다.

이 기금은 최근 1백50명의 외국인 영어교사를 채용하면서 연봉 80만 홍콩달러 (약 1억2천8백만원)에다 주택수당 등 1인당 1백만 홍콩달러 이상을 약속했다.

파격적인 대우를 좇아 당연히 세계 최고의 영어교사들이 몰려들었다.

영국 런던에 주재원으로 파견나간 S기업 尹모 (46) 부장은 지난해 초 IMF위기로 철수하면서 고민 끝에 고교 2년생인 딸을 혼자 현지에 남겨놓았다.

연간 1만2천달러의 학비.생활비가 큰 부담이었지만 한국의 과외비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과외를 통해 편법을 가르치는 것보다 학문의 기초를 튼튼히 다져주는 영국 교육이 딸의 장래에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尹부장이 믿는 것은 영국의 교육원칙이다.

영국 집권 노동당이 내건 정책공약은 "2류 교육 위에서 1류 경제를 운영할 수 없다" 로 시작되고 있다. 교육원칙 1조는 더욱 구체적이다.

"16세 이전의 모든 학생들에게 읽기.쓰기.말하기와 산수학습을 반복시킨다.

" 철저한 기초학습을 통해 교육의 뿌리부터 확실하게 다져놓겠다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다음 회에는 시리즈 총정리 좌담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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