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외채문제 쌍방이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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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가 서해교전이다 금강산관광객 억류사건이다 베이징 (北京) 차관급회담이다 하여 눈앞의 문제에 잡혀 정신이 없는 사이 세계는 무섭게 변하고 있었다.

독일의 퀴란에서 열린 G7정상회담 소식도 외국의 언론들이 연일 대서특필하는 것과 달리 한국 언론에서는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는 듯했다.

모 방송사의 전화인터뷰에서 진행자가 "G7정상회담에서 외채 7백10억달러를 탕감했다는 데 너무 적지 않습니까" 했다.

필자는 그 질문을 듣는 순간 공연히 심통이 나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외채탕감을 위해 진력한 '주빌리 (Jubilee) 2000' 의 입장에서는 너무 적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한국은 별로 참여도 안했고, 관심도 없었는데, '주빌리2000' 측에서 적다고 하니 우리도 적다고 하는 게 우습네요. " 사실 주빌리2000 중에도 영국세는 그 정도의 탕감이면 그래도 자위할 정도는 된다는 평가를 하고 있는 듯하다.

어떤 점에서는 세계시민사회는 다자간투자협정 (MAI) 을 좌절시킨 후 또 한번의 작은 개가를 올린 셈이다.

그러나 아프리카세는 개도국의 독재와 부패를 조장한 외채는 무조건 완전탕감해야 한다는 입장이라 불만이 대단하고 제2의 외채탕감운동을 벌일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투기자본의 규제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던 아탁 (ATTAC) 등의 입장에서는 자본자유화의 그늘을 그대로 두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고 비판하고 있고, 브레턴 우즈체제의 두 기둥인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IMF) 의 해체 내지 개혁을 추진하는 WFA그룹 등에서는 IMF강화를 언급한 이번 G7정상회담을 역사의 후퇴로 보고 불만이 대단하다.

'대구라운드 한국위원회' 에서도 이번에 성명서를 보내고, 8명의 대표단을 파견해 우리의 입장을 설명했지만 사실 G7정상회담에 기대하기보다는, 그곳에 모인 세계 비정부기구 (NGO) 대표들과 연대해 '포스트G7' 을 기약하는 데 노력했다.

'대구라운드' 역시 G7정상회담을 기대하고 어필했다기보다 오히려 '포스트G7' 을 노리고 있다.

대구라운드는, 구한말 대구에서 일어나 전국을 휩쓴 국채보상운동을 기념하는 과정에, 제2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고, 다시 그것을 세계적 시야에서 생각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국채보상운동에서 직권채무자도 아닌 시민들이, 외채를 탕감시켜달라는 것이 아니라 외채를 갚기 위해 금은을 모으고, 술.담배를 끊는 전국민적 결단을 보인 것을 보고, 그것은 채무자 모럴 해저드 극복의 한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국채보상운동이 당시의 채권국 일제의 강압적인 교란에 의해 실패한 데서 채권국의 모럴 해저드 문제의 중요성을 역사적으로 제기한 사건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다시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거장인 프리드먼 교수가 IMF는 채권자의 이해만을 대변함으로써 금융자본의 모럴 해저드를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한 데서 국제금융자본과 국제금융기구의 모럴 해저드 문제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하게 된다.

여기에서 채권자와 채무자, 자본공여국과 자본수입국 쌍방의 모럴 해저드의 극복 - 쌍방의 투명성 회복 - 상호신뢰회복을 기반으로 한 쌍방통행형.쌍방개혁형 국제금융질서의 회복이 진정한 문제해결의 출발점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채무국의 모럴 해저드의 극복논리를 기반으로 국제자본과 세계 시민사회의 신뢰를 끌어안을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채권국.자본공여국의 모럴 해저드의 극복논리에서 투기자본의 규제.외채탕감, 그리고 IMF의 민주적 개혁의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외채탕감은 채권국의 자비심이나 시혜로서가 아니라 자기반성이나 자기개혁의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아울러 쌍방의 모럴 해저드의 극복 - 쌍방개혁의 입장에 서면 투기자본규제나 외채문제를 정치적 조처나 운동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경제적 논리로 사전적 (事前的) 으로 풀어나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대구라운드의 입장에서는 외채.투기자본의 문제를 G7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환영할 수 없다.

채무국 혹은 자본수취국이 참여한 쌍방통행형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말하자면 채권국 일방통행형 브레턴 우즈체제를 극복하고 신브레턴 우즈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신금융라운드를 제의한 것도 그 때문이다.

아울러 대구라운드는 금모으기운동에서 보인 바와 같이 시민이 주체가 되는 개혁, IMF관리체제 극복을 외자주도형에서 시민사회 주도형으로 되돌리는 운동이며, 동시에 시민적 중산층 보호를 사후적인 정부의 재정지출보다는 오히려 사전적으로 투기자본의 규제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운동이기도 하다.

우리가 라운드라고 한 것은 물론 정부간 라운드를 촉구하고 보완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라운드를 말하는 것이지만 앞으로 나타날 정부.민간 합동라운드의 한 전형을 지향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영호 경북대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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