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국민봉사자’가 정치세력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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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법원공무원노동조합,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이 통합공무원노조를 결성해 민주노총에 가입함으로써 우려하던 상황이 현실화됐다. 민주노총은 출범 때부터 기업의 사용자와 근로자 간 근로조건의 개선에 있어서 교섭력을 강화한다는 노동조합의 본질을 넘어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해왔다. 그 때문에 공무원노조들이 통합과 함께 여기에 가입한 것은 민주노총이 처음부터 예정해둔 수순을 밟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업의 근로자들이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동기본권인 단결권을 행사하고 노동운동을 하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강령을 통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표방하고, 각종 현행 제도들을 철폐하고 자신들의 이념을 실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민주노총에 공무원들이 가입한다는 것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공무원 신분의 본질에 맞지 않다.

공무원노조의 설립에 관한 현행 법률에는 6급 이하의 일반직 공무원까지 공무원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게 돼 있다. 공무원은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지며 법을 집행하고, 국민이 내는 세금을 관리한다. 그래서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에 해당하는 쟁의행위는 금지되고, 공무원의 본분에 맞게 정치적인 활동은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합공무원노조는 민주노총의 인원과 예산의 약 30% 가까운 지분을 갖게 됐다. 어떤 사안이나 정부 정책이 공무원 노조원들의 이해에 맞지 않으면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공무원노조의 이익을 위해 사실상의 쟁의행위와 정치적인 활동까지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되면 공무원 노조원들이 우리 헌법과 공무원법에 규정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성실, 복종의 의무를 준수할 것으로 기대하기가 사실상 어렵게 된다.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은 헌법적 차원에서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우리 헌법은 입법·행정·사법부 간의 분리와 독립이라는 원칙을 정하고, 견제와 균형을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도록 하는 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공무원노조는 입법·행정·사법부의 6급 이하 일반직 공무원까지 포함한 단일 노동조합이다. 이들이 민주노총에 소속된 다른 근로자들과 함께 대정부·대국민 투쟁을 벌이고, 자신들의 이익과 정치적 이념을 실현해 나간다면 3권 분립이라는 헌법 원리에도 맞지 않다.

정부는 뒤늦게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 결정이 부적절하다고 성명을 내는 등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공무원노조와 민주노총이 오히려 대정부 투쟁을 경고하고 나서고 있어 통합공무원노조가 갈 길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공무원노조가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의 가장 큰 이유로 내세운 것은 정부의 공무원연금제도 개혁이다. 공무원연금은 이미 바닥이 나 매년 수조원의 적자를 재정으로 메우고 있다. 개혁이 불가피한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연금제도의 개혁을 실무적으로 담당해야 할 공무원들이 민주노총의 정치적 후원을 등에 업고 제도 개혁을 저지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그 고통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의 취업이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그 와중에 선망의 대상인 공무원은 우리 사회의 다른 직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에서 일하고 있다는 지적을 되새겨야 한다. 공무원노조 설립을 허용하는 법률을 제정한 국회도 공무원들이 다시 국민 전체를 위한 봉사자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관련 법을 손질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정년이 보장돼 있고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실무자인 직업공무원들이 거대 노조로 통합해 정치세력화된 민주노총과 단결해 행동한다면 이를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권오용 변호사·법무법인 (유)로고스 구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