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언론은 권력이 아닙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한국기자협회 창립 4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언론은 "스스로 권력자로서의 절제를 고민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처럼 '감시받지 않는 막강 권력'이란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 정보가 권력이고, 정보를 지배하는 자가 언론이며, '권력의 남용'을 주문한 점에서 언론이 곧 권력이란 인식은 변치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언론은 권력일 수가 없고 권력이어서도 안 된다. 언론의 힘은 독자와 시청자로부터 나온다. 그 힘은 권력이 아닌 정치.사회적 영향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사를 무소불위의 권력처럼 생각하고 대통령마저 박해받는 피해자로 인식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빚어진다.

선진국에서 언론은 미디어(매체)다. 일본은 말이나 글로 논하는 언론 대신 보도기관으로 자처한다. 유독 한국에서 언론의 권력화가 문제되는 연유는 두 가지다. 현실정치에 개입해 스스로 중요한 정치적 이해관계자가 되면서 공정성을 상실하는 경우다. '대통령 만들기' 또는 특정 정치세력을 편들거나 배척하는 사례다. 언론기업의 족벌적 소유 경영을 통해 사주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데 그 영향력을 악용하는 경우가 다른 하나다.

일부 보수언론의 과거 행태가 이 두 가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밤의 대통령'식 오만과 일탈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한때 영향력을 과신하고 착각했을 뿐 이들이 바로 권력은 아니었다. 노 대통령 당선과 열린우리당의 연승이 이를 반증한다.

정보를 지배하기 때문에 언론이 권력이라는 말도 현실성이 없다. 국가 및 행정권력, 다국적기업에 대한 핵심정보는 갈수록 접근이 어렵고 이들을 감시.비판하기 위한 전문성도 턱없이 떨어진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제4부'등의 듣기 좋은 수사에서 권력을 떠올리기 쉽다. 실제 제퍼슨의 의도는 미합중국 형성 과정에서 연방정부와 주정부들 간의 전국적 의사소통에 신문의 기능을 높이 산 것이었고, 에드먼드 버크의 '제4부'는 3부의 권력남용에 대한 감시자를 의미했다. 권력에 대한 독립적 감시자이지, 그 자체가 권력은 아니다.

'권언유착'으로, 또는 권력에 기생하며 권력의 나팔수가 되거나 감시견의 본분을 넘어 감시 대상을 깨무는 공격견으로 행세한 불미스러운 과거도 있었다. 이런 월권과 만용은 독자와 시청자에게서 외면당해 스스로의 무덤을 팔 뿐이다.

거대 언론의 사주를 권력자로 죄악시함도 단견이다.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월 스트리트 저널이 고급 신문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것은 가족 소유 때문이란 '자카리아(뉴스위크 편집인)의 역설'도 있다. 거대 주식회사가 되면 주주이익을 너무 의식해 상업화한다. 그러나 가족기업은 단기이익보다 가문의 명성과 공공성.역사성을 중시하며 전통을 지키려 든다. 권력에 맞서 언론자유를 지키는 데 기자보다 사주가 더 적극적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언론자유 없이 만들어진 신문이 팔릴 리 없기 때문이다.

정부와 언론이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려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언론의 비판이 정권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언론을 권력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노 대통령은 축사 말미에 "모자람은 질책하되 서로 애정과 기대를 갖고 질책하고 그러면서 각자 일을 잘할 수 있게 협력하자"고 말했다. 파괴적인 적대관계를 생산적인 긴장관계로 되돌리는 시발점이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변상근 월간NEXT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