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 넘쳐나는 돈벌기.돈쓰기 정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프랑스 철학자이자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레지스 드브레가 프랑스 밀레니엄 행사의 하나로 제안한 아이디어가 생각난다.

2000년 1월 1일 하루만은 상점의 상품, 호텔.찻집 등 서비스, 교통수단을 모두 무료로 제공하자는 것이었다.

제어장치 없이 치닫는 극도의 상업주의가 21세기가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 중 하나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공상가의 꿈 같이 여겨졌던 이 아이디어가 생각난 것은 요즈음 신문.방송을 보면서 느낀 염려 때문이다.

코소보 사태.서해 교전. '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파문 등 국내외적으로 나라를 뒤흔든 사건이 연일 대서특필되는 와중에서도 이에 못잖은 강도와 비중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은 증권.부동산 재테크, 벤처기업 또는 일반 기업체의 성공담 같은 돈벌기와 신상품.쇼핑 정보 등 돈쓰기 정보들이다.

게다가 요즈음엔 광고도 대형화해 전면광고가 즐비한 데다 기사형식을 빌린 투자권유 광고가 많아 신문을 펴면 전쟁이나 스캔들 아니면 돈, 돈, 돈이다.

나는 경제전문가가 아니어서 온 국민의 재테크 전문가화와 적극적 상품 소비가 경기부양이나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탈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요즈음 관련보도들을 보면 돈벌기.돈쓰기 부추기기가 한계를 모른 채 흘러넘치는 느낌이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보통 사람들의 경제사고에 다시 거품을 끼게 해 IMF의 구덩이에 빠지게 한 거품경제를 되불러오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IMF 직전 시기를 돌아보면 열심히 일한 만큼 소득을 얻고, 얻은 만큼 세금 내고, 번 만큼 소비생활을 하는 착실한 생활이 답답한 것으로 코웃음거리가 되던 경향이 있었다.

부동산 투기든 무엇이든간에 단번에 큰 돈을 버는 게 아니면 짜증나고 억울하게 생각돼 큰 돈을 벌 허황된 욕심에 빠진 사람들이 많던 때였다.

그래서 제조업이 무너지고 투기와 유흥업이 비대해지던 세월이었다.

IMF 충격이 가져온 긍정적 효과 중 하나는 경제사고에서 이같은 거품을 걷어내 적게 노력하면서 많이 벌고자 하는 허황된 욕심에서 벗어나 노력한 만큼의 소득에 만족하는 생활정신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데 있다.

그런데 그같은 건전 분위기를 언론에서 경쟁적으로 다루는 온갖 재테크.쇼핑 정보들이 점차 약화시키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아이디어 하나로 수십.수백배 이윤을 남긴 기업가들의 성공담은 도전적인 젊은이들에게 좋은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주는 그야말로 예외적이고 신화적인 모델이다.

흥밋거리로는 질이 떨어질지 몰라도 착실한 생활로 성공하는 보통 사람들의 역할 모델이 실업과 생활고에 허덕이는 시대엔 더욱 필요하다.

청소년들이 강력한 소비주체로 부상하면서 사방에서 그들을 상대로 한 돈벌이에 정신이 없다.

청소년문화가 소비문화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다 보니 극도의 상업주의적 청소년문화가 판친다.

그런데 언론은 이를 걱정하기보다 신기한 뉴스거리를 하나라도 더 찾는데 몰두하고 있다.

중앙일보 경제섹션은 정보도 많고 읽을거리도 풍부하다.

벤처기업과 일반 기업인들의 성공담에서 상품정보에 이르기까지 그 자체로는 나무랄데 없이 훌륭하다.

특히 최근 시작한 '시장은 살아 있다' 같은 특별취재 시리즈는 서울 주요 상권에 대한 시장.사업 정보의 차원을 넘어 특수 지역문화에 대한 조망까지 겸해 읽기에도 재미있다.

그런데 경제섹션의 이같은 강점과 우수함은 역으로 그 영향력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책임의 화살도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다.

우리 경제에 역동성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중앙일보의 사명감은 강하게 느껴진다.

다만 그 사명감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가져올 반대적 현상, 즉 경제.사회적 부작용도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박명진 서울대교수.언론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