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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무너졌을 때 솟아날 구멍을 찾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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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일리노이주는 미국 3대 도시 시카고를 끼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지역구이기도 하다. 주지사의 파워가 어느 정도일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그가 한국 중소기업 제품을 보러 두 번씩이나 발걸음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일자리 때문이었다.

미국에서도 경기는 바닥을 쳤다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일자리 사정은 반대다.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제너럴 모터스(GM)·크라이슬러나 씨티·AIG 같은 대기업은 그래도 낫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서다. 연방정부가 어떻게든 살려준다. 이와 달리 지방기업은 속수무책이다. 대기업에 발목 잡힌 연방정부나, 재정이 거덜 난 주정부 어느 쪽도 기대기 어렵다. 수십 년 전통의 지방기업도 뻥뻥 나가떨어지니 지방 경기가 온전할 리 없다.

한국 중견기업 CT&T가 ‘솟아날 구멍’을 찾은 건 이 대목에서다. CT&T는 한국에서 골프장 전동카트 만드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일제가 판치던 시장을 단번에 석권했다. 그러나 전동카트만으론 한계가 있었다. 새 돌파구가 필요하던 차에 기회가 찾아왔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선언한 ‘그린 뉴딜’ 덕분이었다. 배기가스가 없는 전기자동차는 미 정부 입맛에 딱 맞았다.

그런데 미국 시장을 뚫는 게 문제였다. 고심 끝에 찾아낸 게 각 지방의 레저용 차량(RV) 공장이었다. 승용차 공장과 달리 RV 공장은 지방기업 소유가 많다. 경기 탓에 이미 망했거나 쓰러지기 직전인 공장이 널렸다. 이런 곳에 CT&T의 전기차 생산라인을 깐다면? 몇 곳에 타진하자 뜻밖의 반응이 나왔다. 안 그래도 골칫거리인 RV 공장을 살려준다니 주정부가 구세주를 만난 듯 반겼다. 일리노이 주지사가 두 번이나 달려나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CT&T는 이런 생산라인을 전국 40곳에 깔 계획이다. 전기차는 부품이 단순해 1만 대씩 소량 맞춤형 생산이 가능해서다. 그래도 굳이 생산공장을 쪼개는 데는 더 깊은 계산이 있다. 외국 회사가 아니라 동네기업이 되려는 거다. 앞으로 스쿨버스나 우편배달버스까지 전기차로 대체하게 되면 동네기업이 단연 유리하다.

물론 장밋빛 앞날만 예고된 건 아니다. 한국 중견기업으로선 벅찬 투자 부담을 져야 한다. 생각만큼 미국 내 전기차 수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멀쩡한 한국 모기업까지 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10년, 20년 후를 내다본다면 한번 해볼 만한 도전이 아닐까. CT&T만 그런 게 아니다. 지금 미국은 일자리와 그린 기술에 목말라하고 있다. 미국 시장 공략을 꿈꿔온 기업이라면 지금보다 나은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을 듯싶다. 한국 중소기업을 영접하러 미국 주지사가 버선발로 뛰어나오는 장면을 언제 다시 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정경민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