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40.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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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제9장 갯벌

너무나 어이없는 발언이었기 때문에 코대답도 않은 채 눈을 감고 있는데, 손씨는 다시 채근하고 들었다.

"이봐, 동서 내 말 듣고 있어?" "배에서 조여사를 만나 우째다가 노름판을 벌이게 된 것이 우리가 연길까지 와서 심성이 듬직해 보이는 아가씨를 만나게 됐다카는 거는 인정합니더. 그러나 그런 요행이 연길에서도 벌어지리라는 보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기 착각이라도 보통 착각이 아이라카이요. 설령 그런 요행수가 눈에 빤히 보인다케도 도박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자는 괘씸한 생각은 진작부터 걷어치았뿌러야지요. 형님 집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나라 밖에 나와 보니까, 철이 없어도 억시기 없는 사람이네요?"

"도박을 하려는 게 아니고 심심해서 한마디 한 것뿐인데…, 열통 터뜨릴 건 없어. " "그 아가씨 말을 자세하게 새겨보면, 단추 팔아먹기는 날 샌 거 아입니껴. 그렇다면 인제부터 뭘 어떻게 할 것인지 궁리를 해야 할 차롄데, 형님 눈에는 노름판만 삼삼하다카이 형님은 고사하고 형님 곁에 붙어 있는 내 신세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

"날 샌 거라면 백두산이나 가볼까?" "백두산 타령도 그마이 했으면 알아들었으니 인제 그만하소. 그라고 엄밀하게 따지면, 여기서는 장백산이라면 몰라도 백두산이라고 부르지도 않아요. 손윗동서라는 입장 때문에 속에 천불이 나도 가만가만 이바구하지만,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 옛날에 주먹 나갔다카는 걸 알고나 있습니껴?"

"나도 애당초 견본으로 가져가 보라고 단추 몇 개 건네 주었을 때부터 날 샜다 싶더군. 그깐 단추 몇만 개를 팔아 본들 우리 셋이 볼가심할 거나 있겠어. 잇속 차리기는 진작부터 글러 버린 일이라면, 빈둥거리지 말고 구경이나 하자는 내 말이 그렇게 껄끄러운가?"

"최선책이 먹혀 들지 않는다면, 차선책을 강구해야지요. 단추를 못 팔아먹을 성싶으면, 단추 구멍이라도 파 볼 궁리를 해야 할 거 아입니껴. 나도 희숙이하고 결혼식을 치르고난 뒤부터는 까닭없이 똥끝이 바싹바싹 타 들어가는데, 형님은 도대체 걱정없는 사람 같아서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

"단추구멍 판다니까 얼른 떠오르는 생각이 있네. 우리 중국에다 단추구멍 파는 기계 팔아 먹으면 어떨까? 여기선 아직까지 수작업으로만 단추구멍 파고 있을 텐데?"

"시장조사라카는 게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게라요. 단추구멍이라카면 한국에서는 작은 눈 가진 사람 보고 단추구멍이라 안캅니껴. 그런 것도 한번 생각해 볼만한 게래요. " "단추구멍이라. 눈을 두고도 단추구멍이라 한단 말이지…. "

"여기서 나갈 때는 서시장에서 팔고 있는 원산명태를 도매로 사다가 한국에서 팔아보는 것도 시험삼아 해 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북한은 한국처럼 원양어업이 성행하지 않기 때문에 서시장에 들어오는 북한산 원산명태는 몰밀어서 근해에서 잡은 본바닥 원산명태가 아이겠습니껴. " 그제서야 생각난 듯 후딱 몸을 일으킨 손씨는 방 윗목에 던져 놓았던 배낭을 끌어 당겼다.

그리고 오전에 서시장 구경을 나섰을 때 사 넣었던 명태 한 쾌를 방바닥에 꺼내 놓았다. 벌써 곤하게 잠이 든 태호를 깨워 술을 사오라고 졸라 볼 참이었다.

그리고 태호를 찾아 건넌방으로 달려갔던 손씨는 머쓱해서 돌아왔다. 방에 곤하게 자고 있어야 할 태호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잠가 두었던 도어는 열려 있었다.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던 손씨가 뇌까렸다.

"분명해. 그 순진한 아가씨 꼬셔 가지고 연애하러 간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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