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쁨] 시인 정영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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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내 생에 처음 그런 장미를 받아보았다.

붉은 장미 48송이. 큰 아들이 보내 온 장미상자를 보듬고 한참을 황홀해 했다.

집에 온 남편이 웬 꽃이냐고 하기에 까닭을 말했더니 이 어려울 때에 정신없는 놈이라고 대뜸 화부터 냈다.

생각해 보았다.

내 생일도 아닌데 48송이는 뭐고, 감사의 표시인 카네이션이 아닌 장미는 뭔가, 여러 가지가 궁금해 상자 안에 든 편지를 뜯어보니 그 아이의 깊은 뜻이 담겨있었다.

"어머니, 당신의 생이 온통 가시밭이었음을 압니다. 우리 삼형제라는 꽃을 피워내기 위해 어머니 평생이 우리를 위한 눈물이셨지요…. 이제 그만 우십시오…. 이제부터는 저희들이 부모님을 위해 울겠습니다. " 그래 이제는 안심할 수 있겠다.

참으로 아름답게 자라줬구나. 건강하게 정신의 뿌리가 내려졌구나, 그러곤 장미 한송이를 꺼내 거기에 달린 가시를 세어 보았다.

아이는 꽃을 보고 보낸 게 아니었다.

그 꽃 아래 무수히 달린 가시의 의미를 생각하며 보낸 것이었다.

장미 한송이에 달린 가시는 열아홉개도 있었고, 열세개도 있었다.

사십팔년의, 아니 사십팔개의 장미에 달린 많은 가시는 결국 꽃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스스로의 아픔이었기에 아이는 부모가 달고 살았던 가시를 깊고 애정어린 눈으로 읽고 있었다.

군대 갈 날을 한 달 앞두고 더 어른이 되기 위한 자신의 가시같은 인생의 훈련에 대해 아마도 깊게 생각해 보낸 가시꽃. 그 개수 만큼의 돈을 생각하며 철없는 아들이라고 쉽게 나무랐던 마음에 미안함을 느끼며 아들에 대한 신뢰가 들었다.

나라에 맡겨도 제 맡은 일 성실히 충성스럽게 감당하겠구나. 이런 심성이라면 어디를 가도 잘 견디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어차피 세상은 엉겅퀴 밭이기에 찔리면서도 인내해야 하는, 그것이 또한 철저한 삶의 지혜와 겸손을 가르쳐 줄 것이라는 걸 감히 믿어 본다.

시인 정영주

◇ 협찬 = ㈜한국문화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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