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부인 옷로비설] 검찰, 이형자씨 수사 조심조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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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사천리로 진행되던 고급 옷 로비 의혹 사건 수사가 돌연 주춤거리고 있다.

지난달 28일 김태정 (金泰政) 법무부장관의 부인 연정희 (延貞姬) 씨가 낸 명예훼손 혐의 고소장이 접수되자마자 검찰은 당일 오후 핵심 관련자들을 소환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였다.

그 결과 조사 사흘째인 30일 오전엔 기본 가닥이 잡힐 정도로 수사가 진전됐다.

특히 검찰 지휘부의 표정이 유난히 밝아 수사가 술술 풀리고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국민의 의혹을 한시 바삐 풀어준다는 게 이번 수사의 배경이었던 만큼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도 31일엔 이뤄질 거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었다.

그러나 검찰 분위기는 30일 저녁부터 급반전, "수사 발표가 아무리 빨라도 31일에는 어려울 것" 이라고 서울지검 간부들이 초조해 했다.

30일 오후 11시엔 서울지검 김수장 (金壽長) 검사장과 김규섭 (金圭燮) 3차장 등이 참석한 심야대책회의가 열려 이목을 집중시켰다.

회의 후 참석자들은 "수사가 꼬이고 있다" 고 귀띔했다.

31일이 돼도 서울지검 수뇌부들은 "1일 수사발표가 이뤄질지도 불투명하다" 고 난감해 했다.

수사가 예상치 못했던 암초에 걸렸음을 암시하는 대목들이다.

이에 대해 검찰 주변에선 일단 최순영 (崔淳永) 회장 부인 이형자 (李馨子) 씨에 대한 처리문제가 수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거짓말을 하진 않은 것으로 점차 밝혀지곤 있으나 李씨는 명예훼손사건의 피고소인 입장이다.

그간의 주장이 허위든 사실이든 법적으로만 따진다면 처벌을 면치 못하는 형편인 셈이다.

그러나 李씨는 남편 崔회장을 통해 지난해 신동아그룹이 펼쳤던 각종 로비에 대해 깊숙이 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도 옷값 대납 요구외에 공직자 부인들의 다른 비리를 손에 쥐고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런 '화약고' 를 잘못 건드려 李씨가 각종 로비 의혹을 제기할 경우 진위에 관계없이 걷잡을 수 없는 메가톤급 신동아 로비 의혹으로 번질 게 확실하다.

'최순영 리스트' 는 없다고 강변해온 검찰로서도 감당키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 강인덕 (康仁德) 전 통일부장관의 부인 배정숙 (裵貞淑) 씨가 알선수재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 것도 암초로 작용하고 있다.

金차장도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 (鄭日順) 씨의 진술은 조금씩이나마 달라지나 裵씨는 종전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은 사건 관계자들이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를 규명하는 게 핵심. 시비를 가릴 뚜렷한 물증도 찾기 힘든 상황이라 裵씨가 순순히 자백하지 않으면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을 게 분명하다.

검찰이 31일 이형자씨 세자매를 검찰로 재소환, 鄭씨와 다시 대질신문을 벌이려는 것도 이런 난관을 타개키 위한 수순으로 보인다.

보다 구체적인 鄭씨의 진술을 확보, 裵씨의 자백을 끌어낼 수 있는 까닭이다.

또 裵씨의 건강이 악화돼 입원 중인 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다른 일각에선 비록 검찰이 사건의 골격을 파악하긴 했지만 그간 제기됐던 각종 의혹들에 대해 명쾌한 해명을 찾지 못해 수사발표가 미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延씨 등 사건 관계자들이 그간 경찰청 조사과 (사직동팀)에서 한 진술과 검찰에서 말한 내용이 조금씩 달라 이를 어떻게 국민에게 납득시킬지 검찰이 고민 중이라는 얘기다.

결국 李씨의 처리문제, 裵씨의 완강한 혐의 부인, 경찰조사와의 조율문제 등 곳곳에 풀어야 할 난제가 널려 있어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늦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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