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유하 '바람에게 경배하라' 전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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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바람이 분다

땅위에 선 자들아

오월 강가에 선

이 저녁의 그리움들아

바람에게 경배하라

장미는 향기를 타고

나무는 씨앗을 타고 나무에게 간다

저 바람 속으로

은빛 실을 풀어놓는 거미를

거미는 그 허공의 비단길을 걸어서

그리운 거미에게로 간다

- 유하 (36) '바람에게 경배하라' 전문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라는 발레리의 명구가 있다.

신이 없는 시대의 한쪽에서 여전히 신을 외치는 시대에 그런 신 말고 바람을 경배할 이유가 있다.

바람결에 거미줄이 날리며 거미가 가는 삶의 행로는 짜릿하다.

바람결의 장미향기, 풀씨 나무씨의 행로와 함께 '존재의 확대' 를 이룬다.

세상은 아직도 구원의 장소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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