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모르고 넘긴 전쟁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북한과 전쟁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나중보다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많지 않은 지금 싸우는 편이 낫다. 이 싸움에는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으며 우물쭈물할 시기는 벌써 지났다. "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국무부 정무차관을 지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와 아널드 캔터가 94년 6월 15일자 워싱턴포스트지에 공동으로 올린 칼럼의 한 대목이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의 전면사찰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의 재처리시설 공격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 '선제공격론' 이다.

당시 상황에서 극단적인 주장이었지만 불과 1년여 전까지 미국 대외정책의 책임을 가지고 있던 인물들이 내놓은 것이었으며, 당시 미국 합동참모본부에서도 전쟁의 가능성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이 칼럼이 나오던 날 판문점을 거쳐 평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튿날 카터는 동행한 CNN방송팀을 통해 김일성이 핵동결 용의를 전해왔다고 발표했다.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이 한국에 1만 병력을 추가로 투입하겠다고 밝힌 몇 시간 뒤의 일이었다.

카터가 찾아낸 돌파구는 몇달 후 제네바 기본합의문으로 이어져 2년 가까이 계속된 북핵 (北核) 위기를 종결지었다.

미국 정부는 '무능한 이상주의자' 카터의 방북에 기대를 걸기는 커녕 북한에 이용이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극적이었던 위기해소의 돌파구였다.

제시 잭슨 일행이 몇주 전 벨그라드로 향할 때도 미국 정부는 별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잭슨은 미군 포로 석방을 성사시켰다.

카터와 잭슨이 상대방에게 이용당한 면도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깡패국가 (rogue state)' 의 합리적 선택능력을 과소평가해 평화의 기회를 스스로 놓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이 사례들은 보여준다.

94년 북미협상의 수석대표 로버트 갈루치는 당시 미국 정부가 북한의 상황과 북한 정부의 의도를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10만 미군과 수십만 한국군이 희생될 수 있는 전쟁안을 검토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정부의 햇볕정책이 주변국들의 존중을 받게 된 것은 한반도 평화정책의 자주권 확보에서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페리 전 국방장관이 긴장완화의 사명을 띠고 북한에 다녀왔다.

그의 방북이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앞으로 북한과의 관계에서 한국의 역할 증대가 예상된다.

북한이 '깡패국가' 의 블랙리스트에서 벗어나 미국과 정상적 외교관계를 맺게 되면 한반도 평화는 한국인의 책임으로 돌아온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