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에 바란다]'개각 속보경쟁보다 검증 제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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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앙일보 독자위원회 5월 회의가 25일 오후 본사 회의실에서 열렸다.

위원장인 신구식 (申坵植) 무역협회 차장의 사회로 2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6명의 독자위원들은 개각과 박정희 (朴正熙)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사업 등 지난 한달간 사회적 관심을 끈 이슈에 대한 본지의 보도방향을 놓고 열띤 토론과 비판을 전개했다.

본사에서는 문병호 (文炳皓) 편집국장 대우. 이수근 (李秀根) 논설위원.김두우 (金斗宇) 정치부 차장. 손병수 (孫炳洙) 경제부 차장. 신성호 (申性浩) 사회부 차장. 안희창 (安熙昌) 국제부 차장이 참석, 독자위원들의 지적과 질문에 답했다.

▶신구식 무역협회 차장 = 중앙일보가 5월 17일자 지면에 6.3 재선거 출마 후보자들의 지지도 조사결과를 발표한 것은 시의적절하면서도 타 신문과 차별성을 보여준 좋은 시도였다.

또 최근 개각과 관련, 입각 예상자들을 보도하면서 다른 신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분한 입장을 취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개각때 언론들이 지나칠 정도로 입각 대상자 알아맞히기 경쟁을 벌이곤 하는데 독자입장에서는 곧 발표될 인물을 몇시간 더 먼저 아는 게 큰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인사와 관련, 언론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해당 인물들을 제대로 검증하는 것이라고 본다.

개각을 포함해 5월중 정치분야에 대한 중앙일보 보도에 대해 위원들의 견해를 밝혀달라.

▶김창남 (金昌南)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 이번 개각보도에서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장관들의 출신 고등학교를 너무 부각시켰다.

지연.학연 중시풍조가 그릇된 사회현상이라는 점에서 중앙일보만이라도 저명인사들의 출신 고등학교를 게재하는 작업을 자제했으면 한다.

한편 오는 6.3 재선거를 과열로 몰아가는데 신문이 일조한다는 생각이 든다.

▶조정하 (曺정夏)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 = 개각보도와 관련, 25일자 1면 김상택만평은 각료들이 '호남일색' 이라는 내용이었다.

실제 각료들의 출신지를 따져보면 이같은 표현은 과장된 것이다.

충청.영남권 출신 인사들도 상당수다.

신문이 지연.혈연을 조장하는듯한 느낌을 주어서는 안된다.

▶金 =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박정희 전대통령 기념관 건립 발언에 대해 중앙은 소극적 찬성입장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고 중앙일보가 자체 전화설문조사를 통해 국민들이 朴전대통령의 업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기사를 내보낸 것은 분명 잘못이었다.

이같은 설문조사는 엄청난 역사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朴전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역사적 공과를 정확히 가린 뒤 내려져야지 '독재자' 와 '근대화를 이룩한 지도자' 중 택일하라는 흑백논리식 질문을 통해 그를 긍정적인 인물로 유도한 것은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金대통령이 朴전대통령과 화해함으로써 동서간 감정의 벽이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낸 것도 영호남간 지역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본 느낌이다.

▶曺 = 중앙일보가 송파갑 재선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려던 고승덕변호사 파동을 개인의 경망스러운 행동이라기보다는 한국 정당들의 잘못된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관점에서 다룬 것은 좋은 접근방식이었다.

또 이를 계기로 상향식 공천 및 미국식 예비선거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다른 신문과 차별화된 보도였다.

반면 한나라당의 이수인.이미경의원 보도와 관련, 그들을 비난하는 듯한 논조를 취한 것은 한나라당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 같아 아쉬웠다.

소속정당의 당론과 다르더라도 꼭 필요한 법안이라면 찬성표를 던지는 정치가들이 있어야 한국에도 정책정당이 생겨날 수 있으며 언론도 이를 격려해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申 = 사회분야에서도 경찰수사권 독립요구 등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 주제가 여럿 있었다.

▶오양호 (吳亮鎬) 태평양법무법인 변호사 = 검.경 갈등은 중앙일보가 외국의 사례를 소개하는 등 다른 신문에 비해서는 비교적 충실하게 다뤘다.

하지만 정작 이번 사태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수사권' 이란 용어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설명이 없었다.

독자들이 잘 알 것으로 짐작하고 용어해설을 생략한 것으로 보이지만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생각이다.

▶정승혜 (鄭承慧) 주부 = 吳변호사 의견에 공감한다.

아울러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분석기사가 없었던 것도 아쉬웠다.

독자들은 검.경의 대립 그 자체보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실현될 경우 예상되는 변화에 대해 더 궁금해할 것이다.

또 중앙일보 경제부 차장의 주식 내부자거래 혐의 보도도 다른 언론보다 뒤늦게, 작게 보도한 것은 독자들의 알권리를 침해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정균 (李貞均) 일산 성신초등학교 교사 = 스승의 날에 서울.대구 등 일부 지역 초등학교들이 휴교한 것을 놓고 언론이 마치 촌지수수 때문인 것처럼 단정적으로 보도한 것이나, 학생들의 학업권리를 박탈했다는 식의 비난을 한 것은 교육계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탓으로 본다.

수업일수 조정은 학교장의 재량에 속한 것으로 교육적 판단에 따라 휴교할 수 있다.

근로자의 날에 대다수 근로자들이 쉬는 것처럼 스승의 날에 교사들이 쉬는 것도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신문에 교사들의 목소리가 너무 반영되지 않는 것 같다.

▶申 = 경제 등 다른 분야의 기사는 어떻게 읽었는지.

▶曺 = 24일자 경제패트롤에 삼성자동차 부채처리를 위해 이건희 삼성회장이 사재를 출연해야 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는 식의 글이 실렸다.

이런 글을 싣는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중앙일보가 삼성으로부터 독립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삼성 편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본다.

▶鄭 = 경제섹션에 증권사들이 추천한 증시 유망종목들을 게재한 것은 투자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할 위험성이 있다.

굳이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겠다면 기관.외국인 매매동향이나 수익률이 높았던 종목들을 소개하는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중앙일보 = 중앙일보 차장의 불법주식거래를 뒤늦게 보도한 것은 당사자의 결백주장을 믿었기 때문에 발생한 실수였다.

독자들에게 재차 사과한다. 증시 유망종목과 관련해서는 내부적으로 반대의견도 많았지만 독자 및 투자가들에게 향후 판단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 보도를 결정했다.

일정 기간이 지난 뒤 각 증권사들이 추천한 종목의 실제 수익률을 검증해 보는 절차를 반드시 밟겠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중앙일보가 과오보다 공이 크다고 보는 게 사실이다.

역사인식에 대한 견해차이는 존재할 수 있다.

중앙일보는 앞으로도 사회의 다양한 견해들이 표출될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을 제공하겠으며, 건전한 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가 긍정적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겠다.

정리 = 장도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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