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3대 대통령 제퍼슨의 흑.백 자손들 한자리에 모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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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피부색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제퍼슨, 그분의 자손입니다. "

미국 건국 영웅의 한명인 토머스 제퍼슨이 살았던 버지니아주 샤를로츠빌의 팰러디언 저택. 농장과 숲이 굽어 보이는 몬티셀로의 언덕에 높이 솟은 이 저택의 테라스에서는 15일 1백여명의 흑백 남녀들이 모여 긴장된 표정으로 칵테일과 음료수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제퍼슨이 백인 부인에게서 남긴 두 딸, 마사와 메리의 후손들로 구성된 제퍼슨협회가 매년 5월 열어 온 집안모임에 제퍼슨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둔 흑인노예 샐리 헤밍스의 후손인 흑백 남녀 50여명을 초청한 것이다.

제퍼슨은 생존 당시 헤밍스와의 혼외 정사로 아들을 둔 것으로 소문나 있었

는데 지난해 11월 과학자들이 유전자 검사 결과 헤밍스의 막내아들 에스턴이 제퍼슨가의 핏줄임을 확인한 바 있다.

모임을 주선한 제퍼슨협회의 제임스 트루스콧 부회장은 "헤밍스와 그 아이들이 제퍼슨에 의해 노예신분에서 벗어나 몬티셀로를 떠난 1827년 이래 1백72년만에 다시 모인 오늘, 모두가 그분의 자손임을 선언하자" 고 목소리를 높였다.

밥 질레스피 회장도 "헤밍스의 후손들을 제퍼슨협회의 정회원으로 받아들여 몬티셀로의 선산에 묻힐 권리를 주자" 고 제안했다.

미국 민주제도를 확립한 제퍼슨의 후손답게 회원들은 이를 토론과 투표에 부쳤으나 '결정을 내년으로 미룬다' 는 것으로 결론났다.

제퍼슨과 유전자가 유사한 동생의 후손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고려된 것이다.

그러자 잠시 술렁임이 일었다.

그러나 트루스콧 부회장의 조카 루시언과 헤밍스 후손인 섀넌 래니어는 나란히 "우리는 사실상 한가족" 이라고 외치자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이날 제퍼슨의 흑백후손 1백여명은 유서깊은 팰러디언 저택 여기저기에서 서로 악수를 나누고 집안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연하장을 보내기 위해 주소를 교환하기도 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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