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개헌,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먼저 조율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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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연합뉴스와의 회견에서 개헌 의지를 밝혔다. 8·15 경축사에서 밝힌 국민통합과 동서화합 방안을 개헌으로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경축사에서 지적했던 통치권력과 권력구조, 선거구제 개편, 행정구역 개편을 개헌에 포함하자고 제의했다.

사실 현행 87년 헌법체제가 그 효용을 다했다는 지적은 사회적 공감을 얻고 있다. 이 체제는 군부통치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또 1노3김의 얽힌 이해관계를 절충한 타협의 산물이다. 민주화가 정착되고 나니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의 불일치, 제왕적 대통령 무책임제, 지역갈등을 고착화하는 선거제도 등 문제점만 크게 부각되고 있다.

개헌 방향은 이미 수많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상당히 정리된 상태다.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말에 권력구조만이라도 고치자며 ‘원 포인트 개헌’을 들고 나왔을 정도다. 이 정부 들어서도 김형오 국회의장은 헌법연구자문위를 구성해 1년간의 연구를 거쳐 지난달 말 개헌보고서를 내놨다.

그럼에도 개헌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정작 개헌의 주체로 나서야 할 정치권이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그렇게 개헌을 밀어붙이던 민주당은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자고 한다.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후년에는 국회의원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순리에 따라 합리적인 합의를 도출해 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방선거를 치르고 나서 행정구역을 개편하겠다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다.

여당 사정도 마찬가지다. 영남지역 의원들도 선거구제 개편이 달가울 리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여당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정치의 선진화와 나라의 미래를 위해 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의원들이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면 유력 대통령 후보도 큰 변화를 원치 않는다. 지난 정부에서 원 포인트 개헌이 어려웠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데 더 미루면 이번 정부에서 개헌하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현직 대통령은 으레 임기 초 개헌 논의를 원치 않는다. 자신의 레임덕(권력누수)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지 않고는 개헌 논의가 탄력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갑자기 야당이 뒷걸음치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다.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는 “개헌 필요성은 공감한다”면서도 “국면 전환용이 아니라는 진정성이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현 정부가 지금 딱히 국면 전환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국가의 중대사인 만큼 야당도 보다 진지한 자세로 개헌 문제를 고민하고 다뤄줄 것을 당부한다.

우리는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개헌에 대해 큰 틀의 조율을 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개헌을 할 것인지, 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어떤 절차를 거칠 것인지에 대한 로드맵이 마련돼야 개헌은 추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의 국정운영 최고책임자들이 먼저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것도 늦어지면 소용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