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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ub de Campo Villa de Madri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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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 시내 한복판에서 깨진 차창을 통해 난장판이 된 차를 들여다보며 멍하니 주저앉아 있다 일어났다. 일단 가까운 곳에 있던 경찰차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들은 늘 보는 일이라서 인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저 분실한 것이 무엇이냐, 분실 신고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경찰서까지 가야한다는 정도의 원칙만 이야기 했다.

왜 치안상태가 이 모양이냐며 짜증 섞인 소리를 하자 도리어 왜 가방을 차에 두고 갔냐며, 내부에 아무 것도 없는 옆의 차들을 일일이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스페인에는 북아프리카와 아랍계들이 많아 도난사고가 많기 때문에 늘 차를 깨끗하게 비워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처럼 번호판 자체가 다른 여행객들의 렌트카 차량은 늘 범죄의 대상이 된다고... 사실 경찰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죄가 있다면 트렁크를 꽉 채우고 있는 캐디백 두 개와 트롤리 덕에 뒷 좌석을 가방으로 채우고 다닐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떠돌이 현실.

워낙 피해 규모가 크다보니 수습이 쉽지 않았다. 특히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스페인 같은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경찰서에 가서 손짓발짓으로 분실신고서를 작성했다. 여권을 재발급받기 위해서는 현지 경찰서에서 발급한 분실신고서를 가지고 마드리드에 있는 한국대사관까지 가야한다. 스페인이라는 나라에서는 신용카드를 쓸 때에도 ID카드를 요구하기 때문에 여권 없이는 먹고 자는 일도 힘들었다.

일단 차 유리를 끼우기 위해 경찰이 알려준 정비소를 찾아갔다. 아주 작은 카센터였지만 발렌시아에 있는 유일한 유리 전문 카센터라고 했다. 도착하고 보니 오후 1시가 가까웠다.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아 몸짓발짓에 그림, 숫자, 물건으로로 소통하던 여직원은 1시가 넘어가자 이제 씨에스타이니 16시 이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하는 수 없이 차를 가지고 근처를 배회하다가 16시에 가보니 다시 내일 11시에 오라고 했다. 은근히 화가 치밀어 푸조 대리점을 찾아갔다. 그 곳에서도 당장 수리는 불가능하고 내일 아침 8시에 오면 가능한지 여부를 알려 준다고 했다. 수리해주겠다가 아니고 수리가 가능한지 여부를 알려주는데도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야 한다니... 여러모로 어처구니가 없는 스페인이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유리가 없는 차를 가지고 마드리드까지 갈 수는 없었다.

막상 유리창 없이 차를 몰고 다니다 보니 마치 속옷만 입고 돌아다닌 것만큼이나 허전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유리없이 하루 밤을 보내야 했기에 치안상태가 좋은 고급호텔에 가서 주차장 맨 구석자리에 깨진 차창을 밀착하여 세우고 인터넷과 전화를 이용해 이 난국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한국 여기저기 메일을 날리기 시작했다. 금전적인 손실이야 어떻게든 수습을 한다지만 당장 10일 앞으로 다가온 미국행 스케줄이 문제였다. 미국 비자를 재발급 받을 수 있는지가 최대 관건이었다.

이튿날 아침, 서둘러 푸조 수리점에 가서 차를 입고했다. 한 시간 쯤 지나고 나서 결론이 우리 차에 맞는 유리가 없다는 것이다. 본사가 마드리드에 있는데 주문하면 3일 정도 걸린다고. 3일이라고라?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결국 스위스에서 샀던 젖소가 헤엄치는 머그컵을 들고가 푸조 여직원에게 ‘선처’를 호소하며 갖은 아양과 교태를 떤 끝에 여직원은 근처 다른 카센터에서 푸조 유리를 찾아냈다.

발렌시아에서 마드리드는 아득히 먼 길이었다. 발렌시아에서 마드리드까지는 350km 남짓이지만 고속도로가 아니다. 상태가 좋지 않아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주스페인 한국대사관 영사과 민원실장님은 여성이었는데 상상이상으로 친철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오늘 내에 처리해 주겠다고 했다.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도적을 만나는 것은 끔찍한 기억이다. 친절하고 신속한 대사관 직원을 만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한 시간 30분쯤 지나니 새로운 여권이 발급되었다. 죽은 친구가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 여권을 받았지만 향후 일정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다. 결국 미국 비자는 재발급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유럽의 나머지 일정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상당히 고가 장비인 네비게이션이 남겨졌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트렁크에 골프채도 고스란히 남았고, 별 영양가 없는 옷 가방도 하나 남았다. 결론적으로 아쉬운 대로 우리의 여행은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내 물건을 훔치러 오는 사람인양 느껴졌다. 특히 주차를 시키고 차를 떠나 있는 것이 불안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일단 마드리드에 머물면서 방법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러던 차에 한국에서 보냈던 SOS에 대한 회신이 왔다. 스페인에서 선박사업에 성공하여 한국에 골프장까지 갖고 계신 K 회장님 댁의 마드리드 자택에서 전열을 정비하라는 전갈이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선수가 금메달을 일구었던 K회장님댁 게스트룸에서 우린 4박 5일을 칩거하며 잃었던 많은 것들을 복구해 나갔다. 무엇보다 지친 몸과 놀란 마음을 안정시키고 남은 유럽 일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마드리드에서 남서쪽으로 4km, 마드리드 중심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자리잡고 있는 Club de Campo Villa de Madrid. 1929년 오픈했고 스페인 10대 명문 클럽이며 가장 오래된 골프장 중 하나이기도 하다. 총 200Ha의 부지에 36홀 골프장 뿐만 아니라 테니스, 수영, 승마 등 각종 레저 시설이 다양하여 회원 수가 무려 2만 5천명에 이르는,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스포츠 클럽이다.

사실 회원 수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시청 평의회에서 운영하는 퍼블릭 코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평일임에도 사람들이 미어 터졌다. 티오프 간격도 빠듯하여 우리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다. 보통 한 홀 당 2팀 정도가 대기를 하고 있는 듯. 주말 부킹은 치열한 경쟁률 때문에 제비뽑기로 결정한다고 했다.

하지만 코스 상태는 믿기지 않을 만큼 우수했다. 정규 홀은 Negro와 Amarillo 코스로 나뉘어지는데 Negro가 한 수 위로 인정받으며 각종 골프대회를 유치하는 챔피언십 코스다. 스페인의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를 했다는데 아름다운 코스였다. 특히 매 홀이 나무 숲속에 포근하게 안겨있는 느낌을 주었다. 전형적인 파크랜드형 골프장인데 그린은 작고 이단, 삼단 그린이 많아 도전적이고 드라마틱한 레이아웃을 자랑했다. 난이도는 전반홀은 무지 어렵고 후반홀은 그나마 여유가 있었다. 특히 후반 홀에서는 코스에서 Madrid Royal Palace의 아름다운 전모를 구경할 수도 있었다.

차량 도둑을 만난 이후로 가뜩이나 대인공포증에 걸려 마주 걸어오는 사람만 봐도 깜짝깜짝 놀라는 우리에게, 원없이 사람 구경을 시켜주었던 Club de Campo Villa de Madrid. 유럽에서 늘 대통령 골프를 치다 오랜만에 한국의 치열한 부킹 경쟁을 상기시켜준 그 코스에서 우린 18홀 경기로 7시간 가까이를 소요했을 것이다.

많은 것을 잃었던 스페인 일정이었지만 동시 많은 것을 얻었던 일정이기도 했다. 그간 무사고로 교만해져 가고 있던 여행자가 자숙하는 기간이 되었고, 서로에게 서로가 얼마나 의지가 되는 존재였는가를 깨달았다. 무엇보다 대가 없이 도움을 베풀어주신 분들께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역시 골프도 인생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기는 버거운 길이었다.

이다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