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서울에 온 평양냉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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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문민정부 시절 청와대는 칼국수, 삼청동 총리공관은 냉면으로 상징되던 때가 있었다.

청와대 칼국수는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의 오찬에 초대받으면 으레 칼국수가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항간에는 청와대 칼국수를 먹어보지 못하면 '불출' 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총리공관 냉면은 문민정부 세번째 총리였던 이영덕 (李榮德) 총리로부터 비롯됐다.

평안도 출신인 李총리는 냉면을 좋아해 평소 냉면집을 자주 찾았다.

그러나 총리가 된 후 냉면집 출입이 어려워지자 아예 총리공관에 냉면 국수틀을 갖춰놓고 손님들에게 진짜 평양냉면을 대접했다.

냉면은 평양식과 함흥식으로 대별된다.

평양냉면은 메밀에 녹말을 섞어 국수를 만들고, 꿩고기.쇠고기 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부은 다음 무.편육.오이채.배채.삶은 달걀 등을 얹는다.

함흥냉면은 감자녹말로 국수를 만들어 가자미.홍어 회를 치고 고추장 양념을 한 다음 국수에 비벼 먹는다.

평양음식은 원래 짜지도 맵지도 않은 담백미 (淡白味)가 특징이라 평양냉면도 담백한 것이 본래 맛이다.

따라서 동치미 국물 맛이 냉면 맛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독을 땅속에 묻고 배추에 비해 무를 많이 넣으며, 고추는 적게 넣는다.

한겨울 뜨거운 온돌방에서 이가 시릴 만큼 찬 냉면을 먹는 맛은 별미중 별미다.

해방 전만 해도 남한엔 평양냉면집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6.25 이후 월남한 사람들에 의해 널리 보급됐다.

먹는 때도 비단 겨울철뿐 아니라 사철 언제나 즐겨 먹는 음식이 됐다.

음식점들은 저마다 본가 (本家) 라고 내세운다.

북한에서 평양냉면의 본가는 평양시 옥류거리에 자리한 옥류관이다.

평양냉면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는 이곳에는 요리사 숫자만 3백명에 하루 최대 1만 그릇의 냉면이 팔린다.

북한에는 "옥류관 냉면을 먹어보지 못했으면 평양 갔다 왔다고 자랑하지 말라" 는 말이 있다고 한다.

평양 옥류관 분점이 서울 강남에 문을 열어 서울에서도 옥류관 평양냉면을 맛볼 수 있게 됐다.

음식 재료는 물론 그릇.수저 등 일체를 북한에서 들여온다고 한다.

남북한 교류와 경제협력 활성화의 상징적 '사건' 이라 하겠다.

예부터 잔칫상엔 국수가 빠지지 않았다.

혼례식에선 양가 (兩家) 화합의 상징으로 국수를 먹는다.

평양냉면을 통해 조성된 남북한 화해무드가 냉면발처럼 길게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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