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3국' 이창호, 초반 전력질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바둑의 본질은 실리와 두터움, 그 균형에 있다고 생각한다."(이창호9단)

"실리를 너무 추구해온 점을 반성한다."(이세돌9단)

바둑에서의 실리는 곧 현금이다. 어느 누군들 눈앞의 현금에 약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구나 승부의 막판에 단 한집의 차이를 따라잡지 못해 절망해본 승부사들에게 실리의 가치는 그대로 눈물 젖은 빵에 비유된다. 한집은 땅이요, 두집은 하늘이라던 서봉수9단의 말은 고수들일수록 더욱 실감나는 한마디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금은 누추한 일면을 지니고 있다. 현금에 치우치다 보면 여기저기 엷어져서 뭇 공격에 시달리게 되고 일이 잘못되면 그토록 기를 쓰고 긁어모은 현금도 한방에 날아가 버린다. 이런 까닭으로 예부터 많은 고수가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流水不爭先)'는 말을 금과옥조로 삼아왔다. 이창호는 본래 '느림'의 화신이었다. 그런데 도전기에 앞서 이세돌 역시 속도를 죽이고 흐름에 따라야 한다는 깨달음을 토로하고 있다.

7월 26일 오전 10시, 한국기원에서 제3국이 시작됐다. 1대1 상태에서의 3국은 그대로 승부의 분수령이 된다. 이 중대한 일전을 맞이해 과연 두 고수는 어떤 전략을 준비했을까.

흑7에서 길이 갈렸다. 공격의 유창혁9단이라면 반드시 '참고도'흑1 또는 A로 협공한다. 전투 개시다. 이창호는 흑7로 실리를 택했고 연속해 좌상귀와 좌하귀(21)까지 빠른 속도로 실리를 도려내고 있다. 의외의 흐름이다. 느릿한 이창호가 스타트와 동시에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