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 찾는 지하철 노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8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는 서울지하철 노조가 "구조조정 백지화라는 당초 요구를 철회하고 협상에 나설 용의가 있다" 고 밝혀 사실상 '백기 (白旗)' 를 들고 나왔다.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투쟁은 계속될 것" 이라고 큰소리치던 노조가 갑자기 화해로 나선 것은 여론악화 등 사면초가 (四面楚歌) 의 위기에 몰렸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파업의 실체인 노조원들이 26일 직권면직 시한 도래와 함께 대거 이탈함으로써 노조 집행부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26일 새벽 대열을 이탈해 현업에 복귀한 조합원이 파업 이후 처음으로 50%를 넘은데 이어 낮 12시 현재 4천4백30명 (55.1%) 이 근무지로 돌아갔다.

또 "기관사와 정비.검수 등 기술직의 복귀율이 낮아 지하철 정상운행은 시한폭탄을 안고 달리는 꼴" 이라는 노조의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26일 지하철공사가 "27일부터 단축 운행되던 지하철을 전면 정상화한다" 고 발표했다.

"마음대로 해보라" 는 식의 공사측 반응에 노조 주장의 힘이 빠진 것이다.

결국 파업의 핵심인 기관사 등이 복귀하지 않는다면 시와 공사가 백기를 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노조의 분석이 대체인력 투입과 빠른 속도로 늘어가는 복귀자들로 빗나가고 말았다.

공사측이 "이젠 파업 노조원 없이도 지하철 정상운행에는 지장이 없다" 는 자신감을 보인 것도 압박이 됐다.

당초 26일 오전 9시로 예정된 직권면직 시한이 야근.비번 등 근무유형에 따라 28일 오후까지 연장될 수 있다는 공사 발표로 앞으로 복귀 조합원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문제. 노조 집행부는 "무단결근 7일 이내에 복귀치 않으면 전원 해고하겠다는 공사측의 주장은 협박에 불과하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부가 노동자 대량해고라는 '악재' 를 스스로 만들 까닭이 없다" 며 조합원을 다독거렸지만 이탈 노조원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분석이다.

한국통신 노조의 파업유보 선언도 노조에 허탈감을 더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노조 임성규 사무국장은 "조직력이 약한 한통은 처음부터 파업계획을 세우지 말았어야 했다" 며 비난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외에도 파업을 보는 여론이 어느 때보다 악화돼 있는데다 예년과 달리 검경 (檢警) 이 공권력을 서울대 등 농성장에 즉각 투입하지 않고 외곽에서 '고사작전' 을 벌인 것도 노조의 선택폭을 줄인 것으로 보인다.

김준현.이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