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토크쇼] 마광수-하나무라 '性과 폭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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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98년 소설 '게르마늄의 밤' 으로 일본 정통문학의 최고 문학상인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한 하나무라 만게츠가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55년생인 하나무라는 제도권 교육으로는 중학교 3학년까지만 받고 수상작도 성과 폭력의 노골적 표현으로 화제가 된 일본문단의 이단아다.

일 리크루트사가 발행하는 유력 독서전문지 '다빈치' 에서 지난 해 말 문단 10대 뉴스 중 4번째로 하나무라의 아쿠다가와 상 수상을 꼽을 정도로 그의 수상은 이례적이었다. 대중소설 작가를 일본 제도권의 정통문학이 수용했다는 것. 수상작 '게르마늄의 밤' 은 21일 씨엔씨미디어에서 번역 출간됐다.

'게르마늄의 밤' 은 작가 하나무라가 도쿄 수도원을 배경으로 섹스와 폭력의 종말을 그린 일본 정통 소설의 하나로 인정되는 작품. 살인을 한 뒤 수도원으로 피신해 온 소설의 주인공 청년 로우를 통해 작가는 수도원의 감춰진 속내를 가차없이 드러낸다.

신부는 주인공에게 동성애를 강요하고, 로우는 수녀와 광적인 섹스를 벌인다. 소설속의 성과 폭력을 통해 독자들은 "자기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것" 이라고 하나무라는 강조한 바 있다.

'즐거운 사라' 등의 소설에서 성을 노골적 표현, 비난받은 바 있는 작가 마광수 씨가 하나무라를 만났다. 성에 대한 담대한 표현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이를 이유로 제도권에서 소외된 한국작가와 제도권 최고의 상을 수상한 일본작가가 성 (性) 문화에 있어서 한일간의 차이를 털어놨다.

◇ 마광수 : 당신의 작품이 아쿠다가와 수상작이라는 걸 알고 일본과 우리의 문화의 차이를 새삼 느꼈습니다. 저는 우리 문단에서 '왕따' 거든요.

◇ 하나무라 만게츠 : 마교수의 '즐거운 사라' 일본어판을 봤습니다. 한국이라면 시끄러울 수 있는 작품이다 생각했지요.

◇ 마 : 당신은 성을 대단히 폭력적으로 표현하더군요. 수녀와의 성행위 등 종교까지 들먹이며 거침없이 들이대는 폭력적 표현에 놀랐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그 정도면 단박에 '판매금지' 라든가 '형사처벌' 이 뒤따르거든요.

◇ 하나무라 : 일본에는 성 표현과 관련한 법률적 제약이 없습니다. 영상 쪽에서 가끔 상영금지 조치가 있지만 법적 처벌은 없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인터넷 등 통제 불가능한 매체의 확산으로 처벌은 커녕 검열 자체가 불가능해졌습니다.

◇ 마 : 일본에서 외설물에 대한 처벌이 없는 것을 놓고 극우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른바 섹스.스포츠.스크린의 3S 정책이라는 거죠.

◇ 하나무라 : 잘못된 생각이에요. 정권 유지에 이용될 정도로 일본이 성에 대해 보수적이지는 않아요. 일본의 성문화는 전통적으로 자유로웠어요.

◇ 마 : 개인적으로 나는 이른바 모럴 테러리즘에 의한 피해의식이 있어요. 저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만화나 연극 분야에도 그런 입장을 갖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게 우리 사회에 도덕 정신이 살아 있어서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요. 일본의 표현 자유가 어쩌면 일본의 도덕 정신이 추락된 때문은 아닐까요.

◇ 하나무라 : 자신의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을 뭐라 할 수 없겠죠. 그러나 한국문화의 잣대로 일본문화를 재단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요?

◇ 마 : 당신의 작품도 그렇듯, 일본문학에는 폭력적 새디즘이 많이 나오더군요.

◇ 하나무라 : 일본에는 지금 전쟁도 긴장도 없습니다. 평화롭고 단조로운 일상이 반복될 뿐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현재 실생활에 없는 새로운 긴장을 찾게 마련이에요. 그게 바로 왜곡된 성과 폭력으로 나타나는 거죠. 일본인들에게 폭력과 새디즘은 변형된 형태의 엔터테인먼트일 뿐이란 말입니다.

◇ 마 : 한국에서는 청소년의 모방범죄 우려가 있다고 해서 새디즘이 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 하나무라 : 왜 독자를 신뢰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고작 소설인데, 그걸 모방하다니. 만약 소설을 읽고 모방할 정도라면 그 사람은 소설을 읽지 않아도, 그쪽으로 갈 겁니다. 만약 내 소설을 읽은 사람이 소설 속 범죄를 모방한다면 나는 그 소설의 작가로서 오히려 자부심을 갖겠어요.

◇ 마 : 폭력적 표현이 오히려 실제 행동 충동을 해소시키는 효과가 있지는 않을까요. 대리만족 말입니다. 하나무라씨는 아름답지 않은 성, 즉 새디즘과 같은 폭력적 성 충동이 인간 본능의 근저에 있다고 보시나요?

◇ 하나무라 : 나는 다음에 쓸 소설을 위해 마조히즘과 새디즘을 직접 취재했어요. 그런데 내 안에는 그런 폭력적 본성이 없다고 결론내렸어요. 인간 모두에게가 아니라 일부에 잠재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 마 : 당신의 소설에는 그런 표현이 많던데?

◇ 하나무라 : '게르마늄의 밤' 에 나오는 폭력적 성은 인간 사이의 소통을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본능에 따르는 성적인 소통조차 폭력에 의존하는 형태로 그려보고 싶었어요.

◇ 마 : 저하고는 좀 다르군요. 저는 타고날 때부터 인간은 새디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봐요. 그게 충족되지 않을 때에는 마조히즘으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고요. 문학은 인간의 원초적 욕구를 대리배설시켜 주어야 하지요. 그런 뜻에서 나는 작품에서 새디즘과 마조히즘을 표현합니다. 그래야 사회가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고 건강한 행동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는 거죠.

◇ 하나무라 : 나는 나의 독자를 건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오히려 우울하게 하는 게 나의 창작 전략입니다. 마선생은 작품에서 성을 도착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까닭이 그러면 그런 대리배설 효과를 노린 전략 때문이겠군요.

◇ 마 : 그렇지요. 게다가 성은 항상 아름다워야만 한다는 담론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 하나무라 : 일본에서는 순수문학이 거의 쇠퇴하고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가고 있어요. 지금 일본인들이 추구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첨단에 바로 성과 폭력이 놓여 있다고 봅니다.

◇ 마 : 한국은 한때 절대 빈곤의 시대, 즉 식욕의 시대를 겪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IMF라 해서 곤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식욕이 시대의 화두가 되지 않거든요. 식욕이 해결된 지금은 성욕의 시대입니다. 시대의 수요에 맞추어 나가는 소설도 성욕의 시대에 맞는 담론을 공급해야지요. 우리 시대 문화에 가장 중요한 화두로 성과 폭력이 대두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 고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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