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좋은 정치 대통령의 조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1호 35면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 대통령으로 분주하다. 청문회에서 그 적격성이 판단되겠지만,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해 오던 중도성향의 정운찬 총리 후보의 지명과 더불어 친박계 의원의 장관 지명, 그리고 신임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회동한 후에는 여당 상임위원장들과 오찬을 함께하기도 했다. 또 이번 주엔 박근혜 전 대표와 회동이 예정되어 있다.

의식적으로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던 그간의 모습과 상당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대통령의 모든 행위가 광의의 정치행위고, 또 대통령이 정치행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경제적 효율성과 성과를 중시하는 이 대통령은 정치를 비효율적인 것으로 보고 멀리 하는 듯이 비쳤던 게 사실이다.

사실, 정치는 경제에 못지않은 효율성을 지니고 있다. 경제적 약자를 지원함으로써 이들이 소외되지 않게 해 사회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것, 이해당사자들의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치의 효율성인데, 이는 경제 논리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정운찬 총리 후보와 친박계 장관 후보(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를 지명한 것도 그렇다. 정권 출범 이후 계속해서 따라다니던 ‘고소영’ ‘강부자’ 인사 논란에서 벗어나 국민통합의 명분을 챙길 수 있었다. 눈여겨볼 것은 정치게임의 형식을 바꾸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루하게 계속되던 친이계와 친박계의 직접적인 대결에서 벗어나 박근혜 전 대표를 여권의 잠재적 대권 후보 중 한 명으로 묶어두는 실익도 챙긴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치 논리 역시 경제 논리에 못지않은 부작용이 있다. 경제의 논리가 부익부 빈익빈, 경제적 독과점의 문제 등을 낳을 수 있듯이 정치 논리 역시 그에 못지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경제 논리로 초래된 부익부 빈익빈은 공동체의 유지를 어렵게 할 수 있으며, 경제적 독과점은 독과점 이윤 보장을 위한 시장의 조작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치다. 그러나 정치의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우 경제적 효율성이 침해되는 것과 함께 정치시장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자 할 가능성이 생긴다. 정 후보 지명만 해도 결과적으로 자유선진당은 직격탄을 맞고 대표 탈당과 내분의 홍역을 겪고 있다. 과거 대통령들이 정계 개편을 주도하거나 다음 대통령 후보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퇴임 뒤에도 상왕의 지위를 유지하려고 했던 것들은 모두 정치시장을 조작하고자 하는 유혹에서 비롯됐지만 정치시장에 혼란만 일으키고 성공한 적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이 ‘좋은 정치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경제의 논리와 정치의 논리 간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 경제의 논리에서 소외될 수 있는 취약층과 취약 지역의 눈물을 닦아주는 역할을 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게 단순한 사진 찍기 행사로 비춰져선 안 된다. 예산과 제도로서 소외계층 지킴이 역할을 해야 한다. 동시에 연이은 선거를 앞두고 정치논리에 의한 예산 요구가 빗발칠 텐데 이것을 막는 것 또한 좋은 정치 대통령의 역할이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은 정치시장의 공정한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 당선과 동시에 내려오는 일만 남았다는 말이 있듯이 다음 대선을 위한 세력의 태동과 그들 간의 경쟁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권력 누수를 두려워해 그러한 경쟁을 억누르려고 해서만도 안 되고, 특정 세력을 암묵적으로 지원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공정한 관리자로서 시금석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국회의원 선거다. 공정하고 민주적인 공천을 통해 후보를 선출하고 관리하지 못한다면, 여야 간에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 다음 대선은 혼란의 도가니가 될 것이 뻔하다.

아울러 정치시장에서 소외된 지역과 여성과 같은 소수집단들이 인사 정책과 예산 배분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좋은 정치 대통령의 몫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