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축구] 한국, 기적의 8강 쾌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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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것을 ‘테살로니키의 기적’이라고 부르자. 그리고 한국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에 소중하게 기록해 놓자.

김호곤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3골을 먼저 먹고도 3골을 만회하는 무서운 저력을 과시하며 아테네 올림픽 8강에 올랐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에 이어 한국 축구의 두 번째 경사다.

▶ 18일 테살로니키 올림픽 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조별 예선전에서 첫 골을 터뜨린 한국의 조재진이 말리 골대로 공을 찾으러 들어가고 있다. (아테네=연합뉴스)

한국은 18일 새벽(한국시간) 테살로니키 카프탄조글리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A조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아프리카의 복병 말리와 3-3으로 비겼다. 두 팀은 나란히 1승2무(승점 5)를 기록했지만 말리가 골득실에서 앞서 조1위로, 한국은 조2위로 8강에 진출했다. 한국은 21일 테살로니키에서 B조 1위와 8강전을 갖는다. 같은 시간 멕시코는 개최국 그리스를 3-2로 꺾었지만 두 팀 모두 예선 탈락했다.

승부에서 ‘비겨도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일깨워준 경기였다. 초반 느슨한 흐름 속에서 방심한 한국은 너무 일찍 선제골을 얻어맞고 끌려갔다. 전반 6분 상대 스루패스 한 방에 수비가 무너졌고, 은디야데에게 첫 골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오프사이드로 보였고, 은디야데가 손으로 쳐 떨어뜨린 뒤 슈팅을 한 것이라 핸들링 반칙을 불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주심은 골 사인을 냈다.

한국은 전반 22분 또 골을 허용했다.아크 오른쪽 약 25m 지점에서 쿨리바리가 프리킥한 볼이 골대를 맞고 튀어나오자 쇄도한 은디야데가 가볍게 밀어넣었다.

전반 중반 이후 공격의 고삐를 죈 한국은 42분 조재진의 결정적인 헤딩슛이 골키퍼 선방에 막혀 전반을 0-2로 끝냈다.

후반 한국은 중앙수비 유상철을 미드필드로 올리며 총공세에 나섰지만 오히려 한 방을 더 얻어맞았다.후반 6분 역습을 허용한 상황에서 은디야데가 아크 중앙에서 톡 차준 볼이 조병국의 발을 맞고 은디야데에게 패스한 꼴이 됐다. 은디야데가 골키퍼 김영광을 농락하듯 또 골을 넣었다. 혼자 3골. 한국을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넣는 골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희망이 잠을 깼다. 2분 뒤 김동진의 왼쪽 크로스를 조재진이 벼락같은 헤딩슛으로 연결했다. 또 2분 뒤 똑같은 거짓말처럼 똑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김동진 크로스-조재진 헤딩 골.

태극전사의 놀라운 투혼에 말리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시 5분 뒤, 이번에는 최성국의 왼쪽 크로스를 말리 수비수 탐부라가 걷어낸다고 머리를 틀어 헤딩한 볼이 정확하게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3-3.

10분도 안돼 4골이 터지는 백병전이 끝나자 휴전이 찾아왔다. 말리도 한국도 무리하게 공격할 이유가 없었다. 문전에서 이리저리 공을 돌리자 얼마 안 되는 그리스 관중이 야유를 했다. 그러나 그 시간 그리스가 멕시코에게 지고 있었으므로 야유는 의미없는 외침이었다.

90분이 지나고 2분 추가시간이 주어졌다. 말리 선수들이 공을 돌리면서 시간을 보냈고 주심이 길게 종료 휘슬을 불었다. 한국 축구에 새 역사가 쓰여지는 순간이었다.

테살로니키=정영재 기자

◆18일 전적

△남자축구 A조 조별리그
한국 3-3 말리
멕시코 3-2 그리스

▲동 순위= 1.말리 2.한국(이상 1승2무.골득실차) 3.멕시코(1승1무1패) 4.그리스(1무2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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