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 아시아 고전 훈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연극계에 아시아 고전 바람이 불고 있다. 국립극단이 루쉰 (魯迅) 의 '아Q정전' 을 지난주 끝낸데 이어 예술의전당에서도 16일부터 인도의 타고르와 중국 차오위 (曹愚) 의 작품을 중심으로 '20세기 대표작가 연극제' 를 펼치고 있다.

서양연극 편식증이 심했던 연극계가 아시아로 시선을 옮기고 있는 것. 이름으로만 친숙하던 아시아 문호의 작품을 만난다는 점에서 일단 기획 자체만으로도 연극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일반관객이 작품을 재미있게 감상하는데는 어려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요즘 젊은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극적인 반전이나 동적인 움직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16~18일 펼쳐진 '우체국' (채윤일 연출) 은 타고르의 이름만을 좇아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자칫 지루해 할 수도 있다. 병에 걸려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마다브 (이호성) 의 양자 아말 (박은숙) 이 2층 창문을 통해 우유장수와 순찰꾼.시장.꽃집딸 슈다.동네 소년 등 지나가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가 줄거리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임금님의 편지를 기다리던 아말이 결국 눈을 감는 것으로 작품은 막을 내린다. 클라이맥스도 없고 그렇다고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희곡과 영감 역을 맡은 이호재 등 출연연기자들의 탄탄한 실력 때문에 이 작품은 볼만한 가치가 있다.

또 감각만이 아니라 보고 듣는 훈련이 필요한 연극도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 차오위의 '일출' (김철리 연출) 은 '우체국' 과 정반대로 30년대 상하이에서 사교계의 꽃으로 군림하던 진백로를 중심으로 한 사실주의 연극이다. '우체국' 은 28일~5월 2일까지, '일출' 은 23~25일.5월 5~9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02 - 580 - 1300.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