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총재, “금리 올려도 기조 안 바뀐다” 부동산 시장에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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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중앙은행의 물가 관리 기능에 높은 비중을 두는 ‘인플레 파이터’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모처럼 본심을 드러냈다.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와 맞물린 집값 상승을 경고하면서 기준금리의 인상을 강력히 시사한 것이다. 그는 10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간담회에서 “지금은 상당히 강한 금융 완화를 하고 있다”며 “금리를 일부 올린다고 해서 이 기조가 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언제 기준금리를 올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깜빡이’를 켠 것이다.

이 때문에 금통위가 이날 7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연 2%로 동결한 것은 아예 뉴스가 되지 못했다. 채권시장은 이날 ‘이성태 쇼크’에 휘말렸다. 한마디로 ‘방심하다 허를 찔렸다’는 분위기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21%포인트 오른 연 4.5%로 마감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도 연 2.58%로 전날보다 0.01%포인트 상승했다. 현대증권 신동준(채권담당) 애널리스트는 “최근 G20 회의에서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라는 합의가 있어 이 총재가 부드럽게 언급할 것으로 봤는데 예상과 달랐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기준금리를 연 3% 수준으로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이 총재의 발언은 지난달 금통위 직후 “시장금리가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해 오르고 있는데 이는 너무 앞서 나간 것”이라는 말과는 강도가 완전히 다르다. 그는 더 나아가 ‘통화정책은 한국은행의 몫’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사회 각 분야에서 금리에 대해 여러 얘기를 할 수는 있지만 최종 판단은 우리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금리 인상은 중요한 문제로 사회 여론이나 분위기가 중요하다”며 유화적인 자세를 보인 것과는 영 딴 판이다.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둔 이 총재가 강성 발언을 한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주택시장의 불안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금융감독원이 수도권에서 담보인정비율(LTV)을 높였지만, 주택담보대출은 계속 증가했고 결국 지난 7일부터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까지 동원했다. 이 총재는 “집값이 계속 오르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빚을 내서 집을 사는 현상이 나타나면 곤란하다”며 “이런 문제가 확산되면 금융 완화라는 정책 기조를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DTI 규제도 약발이 듣지 않으면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들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인 것이다.

하반기 경제상황이 괜찮을 것이라는 판단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반기에도 플러스 성장을 할 것으로 보인다”며 “연간 성장률도 우리가 예상했던 것(-1.6%)보다는 좋은 수치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재정투입 효과가 줄어들면서 완만한 성장을 할 것이고 아직 불확실성도 많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연내 금리 인상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금융연구원 장민 거시경제연구실장은 “3분기 성장률과 금융 당국이 강화한 DTI 규제 효과를 본 뒤 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경제상황을 살피는 형태가 유력하다”고 말했다.

금융계 일부에선 이 총재가 큰 폭으로 내렸던 기준금리를 임기 만료 전에 어느 정도 정상화시키려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초엔 이 총재의 연임 여부나 후임자가 누가 될 것이냐도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본격적인 출구전략을 집행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김원배·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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