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패방지위 屋上屋 안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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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대적인 부패방지운동이 상반기중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민관 합동기구인 부패방지정책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고 '공직자 표준행동강령' 을 제정하는 등 정부안의 윤곽이 어제 국무조정실이 주도한 세미나에서 발표됐다.

앞으로 여론수렴을 거쳐 6월중 정부의 종합대책안이 확정될 것이라고 한다.

해외 조사기관이나 언론에서 틈만 나면 거론하는 한국 사회의 높은 부패지수 (指數) 를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누구보다 우리 국민 자신이 각 분야에 스며든 부패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정부의 상황판단과 개선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몇가지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우선 국무총리가 공동위원장을 맡는 기구를 설치한다는데 이 기구가 기존 사정기관인 감사원.검찰.경찰과 어떤 관련성을 갖느냐 하는 점이다.

이런 사정기관들이 제대로만 작동한다면 총리까지 나서는 어마어마한 기구는 애당초 필요없을 것이다.

흔히 검찰이 국가의 최고 사정기관이라는데 이런 기구가 생기면 과연 옥상옥 (屋上屋) 이 되지는 않을 것인가.

우리가 보기에 기존 사정기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문제다.

어제의 세미나에서 정신문화연구원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정부패가 가장 심한 공직분야로 응답자중 76.1%가 정치권을 꼽았다.

말하자면 정치권 사정이 가장 필요하다는 것인데 사정기관이 중립성.형평성을 갖지 못하고는 정치권 사정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필요하다면 민관 합동기구의 설치를 해도 좋겠지만 그에 앞서 사정기관들의 정치적 독립과 중립을 보장하는 것이 선결과제일 것이다.

한국적 부패의 한 특징으로 흔히 '부패의 계열화 (系列化)' 현상을 드는데 부패계열의 최상층부에 자리잡은 고질적인 정경유착 비리나 정치인 부패를 독립된 사정기관이 척결하지 못하는 한 이 부패계열의 고리를 끊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부패방지를 위해서는 제도에 앞서 국정책임자의 의지와 각오가 얼마나 결연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역대정부가 모두 부패척결을 외치고, 심지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까지 사정을 해왔지만 부패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은 한때의 정치적 필요성이나 편의주의로 사정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는 정부가 새로 민간기관에 용역을 줘가면서까지 부패방지방안을 마련하는 등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은 평가하고, 또 행동강령 제정 등의 장치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부패방지를 위한 정부노력이 정치적 유.불리 (有.不利) 차원을 넘어 국정최고책임자가 결연한 의지를 갖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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