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방치되는 문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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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나라가 문화재 관리에 얼마나 소홀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 서울 창덕궁에 보존 중이던 상당수의 옛 왕실 유물과 미술품이 도난당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내각 사무처는 없어진 유물과 미술품이 자그마치 2백16점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뒤이은 조사과정에서 그 숫자는 정확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관리책임을 맡고 있던 구황실 (舊皇室) 재산사무총국에는 전문 직원이 없었고, 따라서 정확한 유물 대장 (臺帳) 조차 작성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문화재에 관한 각종 서류와 기록이 일제 (日帝)에 의해 멸실됐거나 한국전쟁 중 유실된 탓도 있지만 그것을 다시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관계 전문가들이 동원돼 도난사건의 내막 조사에 나섰지만 문화재의 관리상태가 엉망이라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기록에도 없는 유물이 나타나는가 하면 기록과는 다른 엉뚱한 장소에 가 있는 유물들도 많았으니 어떤 유물을 얼마나 도난당했는지 파악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결국 그 사건은 흐지부지돼 버리고 말았는데, 그렇다면 그로부터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의 문화재 관리는 어떨까. 물론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게 다뤄지고 있기는 하지만 국보나 보물 등 널리 알려진 유물이나 미술품에 비하면 지방에 산재해 있는 문화재들은 여전히 방치된 상태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발생한 전남 선암사 (仙岩寺) 의 탱화 (幀畵) 도난사건이 좋은 예다.

선암사는 9세기 신라때 도선 (道詵) 이 창건했다는 유서깊은 천년사찰이다.

특히 이 사찰에 소장돼 있는 1백26점의 보물급 탱화는 우리 불교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돼 왔는데 그중 51점이 행방을 감췄다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두 종단 (宗團) 의 소유권 분쟁으로 정부로부터 재산관리 책임을 위임받은 순천시조차 선암사의 유물 보유 현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너해 전 정부는 남대문 (崇禮門) 으로 돼 있는 '국보1호' 의 변경을 검토한 적이 있었다.

일제가 문화재적 가치에 의해서가 아닌 조사 순서에 따라 정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등급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방문화재 가운데도 국보나 보물에 못지 않게 중요한 유물들이 많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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