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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흥신소 청부해킹 성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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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회사원 오모(30.여)씨는 지난 5월 자신의 e-메일 사이트를 확인하던 중 깜짝 놀랐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온 편지를 전부 삭제했기 때문이다. 즐겨찾는 사이트나 카페는 물론 전화번호 등 신상정보까지 바꿔놓았다.

영문을 모르던 오씨는 최근에야 남자 친구에게서 '범인'이라는 자백을 받아냈다.

둘 사이가 소원해지자 남자 친구가 오씨에게 애인이 생긴 것으로 의심, 전문 해커에게 e-메일 해킹을 부탁해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e-메일 내용을 훔쳐보고 조작한 것이었다.

돈을 받고 특정인의 e-메일이나 메신저.게임의 아이디(ID)와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청부 해킹'이 사이버 공간에서 확산되고 있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다른 사람의 e-메일과 신상정보를 캐낼 수 있는 '사이버 흥신소'시대가 온 것이다.

다음.네이버 등 e-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각종 포털사이트에는 '비번 해킹' '비밀번호 해킹' 등의 검색어를 입력하면 해킹을 부탁하는 네티즌들이 수십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의뢰인들의 주문 목적은 다양하다. 배우자나 여자 친구의 e-메일을 몰래 엿보기 위해, 인터넷에서 게임을 하다 도둑 맞은 사이버 머니나 게임 아이템을 되찾기 위해서 등이다. 한 심부름센터 게시판에는 경쟁 회사의 e-메일을 해킹해 준다는 글도 올라 있다.

전문 해커들은 의뢰인과 접촉, 이들이 원하는 특정 ID와 비밀번호를 해킹해 전달해준다. 이들의 수고비는 10만~20만원 선이며, 이르면 하루나 이틀, 늦어도 일주일이면 임무가 완수된다고 한다. 기자가 접촉한 한 전문 해커는 "컴퓨터에 침투해 중요한 파일을 빼올 수도 있고, 애인이나 직원의 e-메일을 감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해커들은 의뢰인이 요청한 사람의 e-메일로 사진파일이나 음악메일 등을 보낸다. ID 주인이 호기심에 문제의 파일을 클릭하면 가짜 로그인 페이지가 화면에 뜨고, ID 주인이 입력한 비밀번호가 해커에게 전달된다.

해커들은 '넷버스'나 '스쿨버스'와 같은 해킹 프로그램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들 프로그램은 3만~4만원에 온라인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 같은 사이버 흥신소의 계약은 인터넷을 통해 은밀히 거래되기 때문에 경찰의 사이버수사대조차 구체적인 피해사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안시스템이 허술한 개인용 컴퓨터의 경우 신상정보 유출이나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해킹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의심스러운 파일이 첨부된 메일은 열어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안철수연구소의 조경원 연구원은 "비밀번호를 자주 바꾸고, 수시로 보안 패치를 업그레이드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 해킹=컴퓨터 시스템이나 인터넷 사이트에 불법으로 접근해 정보를 빼내거나 파괴하는 행위. 2000년 해킹범죄는 449건이었으나 지난해 1만4159건으로 급증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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