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발칸] 반나토 잠재운 미국의 '당근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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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의 유고 공습을 강도높게 비난하던 러시아와 중국이 요즘 조용하다.

공습 첫날 유고에 무기제공 의사까지 밝혔던 러시아는 갑자기 '중재' 를 자청하고 나섰고, 나토가 공습을 단행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던 중국도 입조심하는 분위기다.

이를 두고 서방에서는 양국이 모두 미국의 '경제 카드' 에 발목이 잡힌 탓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러시아는 국제통화기금 (IMF) 의 구제금융에, 중국은 세계무역기구 (WTO) 가입에 목을 매고 있어 미국에 대해 큰소리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 러시아 = 프리마코프 총리는 29일 "30일 유고를 방문, 밀로셰비치 대통령과 나토의 평화안 중재에 나설 것" 이라고 밝혔다.

내친 김에 유럽연합 (EU) 의장국인 독일까지 방문,가시적인 소득을 얻어내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불과 5일전 미국 방문길에 나토 공습 소식을 접하고 대서양 상공에서 비행기를 U턴시켜 귀국했던 프리마코프 총리의 기세등등했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당시 그는 "유고에 무기 공급까지 검토할 것" 이라며 초강경 입장을 밝혔다.

이같은 러시아의 태도변화는 IMF와 러시아의 구제금융 타결 직후 나왔다.

러시아는 이날 "IMF가 향후 1년내에 러시아에 약 48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추가 지원키로 했다" 고 밝힌 것. IMF는 연초 러시아에 요구했던 재정흑자 규모도 국내총생산 (GDP) 의 3.5%에서 2%로 완화, 재정운용의 융통성을 넓혀주는 호의 (?) 를 베풀었다.

이 결과로 파탄 직전의 러시아 경제가 한숨을 돌리게 된 것은 당연하다.

연말에 만기가 되는 IMF와 국제채권단인 '파리클럽' 의 부채 1백75억달러중 46억달러 정도가 부족했는데 이 자금을 마련하게 됐기 때문이다.

◇ 중국 = 공습 첫날인 지난 24일 유럽순방 중이던 장쩌민 (江澤民) 주석은 "나토 공습은 심각한 피해와 사상자를 초래하고 발칸반도의 상황을 악화시킬 뿐" 이라며 공습 중단을 촉구했다.

江주석은 26일 또 다시 공습중단을 외쳤지만 강도나 상당히 누그러졌다.

미국 독주에 강경자세를 고수해온 중국의 이같은 태도와 관련, 외신은 중국 경제의 사활이 미국에 달려 있는 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중국은 올해 수출증진과 내수진작을 통해 지난해 수준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1억4천만명에 달하는 실업자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이를 위해 4월 6일로 예정된 주룽지 (朱鎔基) 총리의 방미 이전에 미국과 WTO 가입문제를 타결, 외자유치와 수출증진을 노리는 게 중국의 전략. 그러나 그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은 ▶정보통신산업의 외자규제를 기업자본금의 35%까지 완화▶외국계 금융기관의 업무영역 확대 ▶미국산 소맥과 감귤류의 수입제한 완화 등 10여개 주요 조건을 제시했으나 미국은 '아직 멀었다' 는 반응이다.

29일에는 샬린 바셰프스키 미 무역대표부 (USTR) 대표가 급히 베이징 (北京) 을 방문, 추가 시장개방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판국에 미국의 비위를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서방언론의 분석이다.

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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