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수지여사 눈물의 남편 사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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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내가 자랑스럽다. " 미얀마 반정부 지도자 아웅산 수지 여사의 남편 마이클 아리스 (52)가 지난 27일 새벽 영국에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이날은 그의 53번째 생일. 임종 자리에는 알렉산더와 김 두 아들이 있었지만 그가 애타게 찾던 부인 수지 여사는 없었다.

전립선 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리스는 부인 곁으로 가기 위해 미얀마 당국에 비자를 신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미얀마 정부는 "아리스는 서방의 밀사" 라며 4년 동안 그의 귀국을 막아왔다.

대신 "부인이 남편 곁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 는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수지 여사는 암세포가 남편의 척추와 폐에까지 침범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미얀마를 떠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해 스스로 출국을 거부했다.

남편 곁으로 한번 떠나면 다시는 당국의 방해로 조국, 미얀마 땅을 밟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수지 여사는 부음을 듣고 짧은 성명을 발표하는 것으로 남편을 떠나보냈다.

"투병 중이던 남편을 격려해주고 나와 우리 가족에게 사랑과 연민을 보내준 전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 "

남편 아리스는 옥스퍼드대의 저명한 티베트 문제 전문가.

수지 여사는 옥스퍼드대 유학중 아리스를 만나 72년 결혼했다.

아리스의 열렬한 구애에 수지 여사는 "언젠가 조국이 나를 필요로 하면 헤어질 수밖에 없다" 는 조건을 달고 결혼을 승낙했다.

행복했던 결혼생활은 88년 수지 여사가 노모의 간병을 위해 미얀마로 돌아왔다가 전국민적 민주화 열기에 휩쓸려 민중운동의 지도자로 떠오르면서 막을 내렸다.

당국의 철저한 탄압과 거듭된 연금으로 아리스가 지난 10년간 수지 여사를 만난 것은 겨우 다섯번. 아리스는 외조 (外助) 로 사랑을 대신했다.

부인의 글을 모아 책을 펴내고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했다.

91년 노벨 평화상 수상 때에도 고국을 떠나지 못하는 부인 대신 그가 수상식에 참석했고 수백개의 인권상도 부인 대신 받았다.

국제사회는 그를 "용기있고 참을성 많은 남편" 으로 불렀다.

로이터 통신은 "아리스는 투병 말기 아내를 만나지 못하고 눈을 감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고 전했다.

수지 여사는 남편의 사망소식에 "그를 만난 것은 나에게 행운이었다.

그 무엇도 남편을 내게서 빼앗아갈 수 없다" 며 망부가 (望夫歌) 를 대신했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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