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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근한 인터넷 '블로그'의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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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난 7월 26일 미국 보스턴 플리트센터. 대선 후보 공식 지명을 위한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린 이곳에서는 새로운 실험이 벌어졌다.

기자가 아닌 네티즌 35명이 민주당으로부터 언론증명서를 발급받아 열렬하게 취재하고 그 내용을 자신이 인터넷에서 운영하는 1인 미디어(매체)인 블로그(blog) 에 올렸다.

이들은 언론기관의 틀에 박힌 보도와 달리 스타 정치인과 대회장 분위기를 자신만의 감성으로 다양하게 소화해 지구촌에 알렸다. 민주당은 이 아이디어로 제법 재미를 봤다.

블로거(블로그를 하는 사람)로 불리는 이들에게 미국 민주당은 정치 스타들을 인터뷰할 수 있는 전용 공간까지 제공했다.

포털 사이트나 신문사 사이트에 누구나 비용 부담없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개인방인 블로그가 개인과 세상의 의사소통 방식을 뒤흔들고 있다. 블로그는 개인 홈페이지보다 다른 네티즌과의 소통이 수천배는 활성화되게 만든 마술 같은 도구다. 개인이 경험한 일이나 자신있는 분야에 대해 글이나 일기를 쓰고 사진.동영상.논평 등을 자유롭게 올린다.

새 글을 쓰면 해당 사이트의 블로그 홈페이지에 소개돼 널리 알려지고 댓글을 단 사람을 클릭하면 그 사람의 블로그로 이동해 대화를 나누게 된다. 마음에 드는 네티즌은 친구나 1촌으로 등록하면 서로 새 정보를 올렸을 때 자동으로 알게 된다. 사이버상에서 전혀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다른 블로그의 글과 사진도 바로 자신의 블로그로 퍼올 수 있다.

이에 따라 관심분야가 같은 사람끼리 친구로 연결되면 대단한 정보의 창고가 된다. 놀이 마당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의 블로그는 사진 같은 시각물이 강해 눈요깃감으로도 주목받는다.

평범한 개인이 세상에 자신을 알리는 데는 이만한 무기가 없어 국내에는 벌써 2000만개 정도의 블로그가 만들어진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블로그의 힘은 감성적 내용이 많고 푸근함을 느끼게 한다는 데 있다. 인터넷 하면 거친 말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블로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인터넷'이라는 이미지를 굳혀 가고 있다. 진솔한 내용을 담은 블로그가 인기를 끈다.

한 아빠는 육아일기를 쓰면서 '딸과 하고싶은 100가지 일'을 띄워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블로그에 사생활 얘기나 사진이 뜨면 수백건의 댓글이 붙는다. 빈곤층 어린이를 위해 본지가 진행 중인 'We Start 운동'도 블로그를 활용하면 자원봉사 네트워크 등이 더 활성화될 것 같다.

이젠 수많은 블로그에 실린 글과 사진이 뉴스로 취급받기 시작하고 있다. 이라크전쟁을 이라크인의 입장에서 생생하게 전달, 언론 뉴스 이상으로 주목받았던 '살람 팍스'의 블로그가 대표적인 예다.

블로그에선 갑돌이.갑순이, 누구나 소식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제도언론에는 없는 소식들이고 제법 호소력도 있다. 이러다 보니 앞으론 블로그가 뉴스 시장에서 제도언론의 영향력을 앞지를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기존 언론에는 큰 도전이다.

미국의 대표적 블로거 중 한명인 데이브 와이너는 뉴욕타임스 인터넷신문의 최고경영자에게 공개 도전장을 던졌다. 2007년이면 검색 사이트인 '구글'에서 뉴욕타임스 기사보다 블로그 글이 더 많은 조회수를 기록할 것"이라는 와이너의 주장을 놓고, 양측은 2000달러짜리 내기를 인터넷에서 진행 중이다. 언론과 블로그의 씨름판. 올림픽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다.

김 일 디지털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