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금감원 '안으로 굽는 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밖으로는 쇠방망이, 안으로는 솜방망이'. 대한생명의 부실 경영과 감독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점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대한생명은 최순영 (崔淳永) 회장을 비롯해 전.현직 임직원 13명이 줄줄이 출국금지 조치와 함께 검찰에 수사의뢰됐다. 회사에 끼친 손해를 보상토록 하기 위해 개인 재산과 퇴직금에는 가압류 조치가 취해졌다.

비록 崔회장이 시켜 한 일이라고 해도 회사에 끼친 피해는 반드시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금융감독원은 큰소리쳤다.

그렇다면 대한생명의 경영을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감독원 임직원도 마땅히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정보 (李廷甫) 전 보험감독원장만 검찰에 수사의뢰됐을 뿐 나머지 임직원들은 내부징계로 그쳤다. 그나마 관련된 8명 가운데 4명은 이미 퇴직한 상태여서 징계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됐다.

이에 대해 감독원은 "李전원장이 부하직원들의 보고를 묵살하고 어떤 조치도 취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며 "원장이 내린 명령을 복종했다고 사법처리할 수는 없지 않느냐" 고 항변한다.

그러나 상사가 시켜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가 왜 감독원 직원에만 적용되고 대한생명 직원에게는 해당이 안되는 것일까. 이 때문에 시중에선 감독원 직원을 엄하게 처벌할 경우 당시 보험감독원을 감독해야 할 위치에 있었던 금융감독위원회에까지 불똥이 튈까봐 봐준 게 아니냐고 수근대는 소리도 들린다.

무엇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감독소홀 책임은 더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엉터리 감독을 해도 최악의 경우 사표만 내면 그만이라는 관행이 굳어진다면 제도를 아무리 고쳐도 감독이 제대로 되기를 기대하긴 어렵지 않을까.

정경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