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우의 행복한 책읽기] '왜 우리 신화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 '왜 우리 신화인가'(동아시아) - 김재용.이종주 지음

최근 우리 학계와 독서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 중의 하나는 '신화' 에 대한 관심의 고조와 확산이다.

근대의 출범 이후 망각과 경멸의 대상으로 치부돼 왔던 신화가 새롭게 논의의 표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세기말이란 시대적 분위기가 조성한 일시적 현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근대성의 한계에 대한 깨달음과 맞물려 일어난 '인식론적 방향전환' 의 결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신화에 관련된 담론들엔 몇 가지 우려스러운 점도 없지 않다.

예컨대 자신이 신봉하는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신화를 교묘히 이용하는 낡은 수법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성중심주의를 더욱 굳건히 하고 탈신화화 작업에 매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엔 신화에 대한 갈구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것은 어떤 형태로든 표출될 기회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화에 대한 관심이 학문적 심화를 동반하지 않은 채 일종의 지적 장식으로 남용될 때 이런 현상은 언제든지 되풀이될 소지가 있다.

그런 점에서 김재용 (원광대 국문학).이종주 (전북대 국문학) 교수가 함께 저술한 '왜 우리 신화인가' (동아시아.1만2천원) 는 매우 반가운 노작이다.

이 책에서 두 저자는 신화에 대해 우리가 지니고 있던 관심의 너비를 한 단계 확장시켜줌과 아울러 그 방향을 조심스럽게 변경시켜주고자 하는 의욕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먼저 신화 하면 대뜸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리는 우리의 편식성을 문제삼는다.

실은 한반도야말로 전국토가 만신전이라 할 만큼 신으로 가득찬 나라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동안 무형의 유산인 우리 신화에 지나치게 무심해왔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 정신과 문화 저변에 자리잡고 있는 우리 신화의 뿌리를 캐들어가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 한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 신화의 상징과 구조를 말해줄 자료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단군이나 동명왕에 관한 이야기만 하더라도 개국신화에 그칠 뿐 개벽신화.창세신화는 사라지고 없다.

저자들은 이런 난점을 돌파하기 위하여 만주의 소수민족 사이에 전해오는 신화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들과 우리는 고구려라는 역사적 울타리 안에 같이 살았던 적이 있으며 동일한 시베리아 문화권에 속해 있다.

특히 두 저자는 '천궁대전' 이란 신화가 동북아시아 신화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단정하고 이것이 우리 신화와 어떻게 접속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 신화에 나오는 아부카허허라는 창조여신은 여성 성기와 버드나무를 의미하는데 이 여신은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과 동일시된다.

그녀는 국가의 시조모이자 풍요의 여신으로서 금나라의 아골타와 청나라의 누루하치, 그리고 고려의 왕건과 조선의 이성계 같은 인물의 건국신화에 그 모습을 달리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전설과 민담에 자주 나오는 우물가 버드나무 옆의 처녀 역시 유화의 다른 얼굴이다.

만주신화에서 우리 신화의 잃어버린 모습을 찾고자 하는 저자들의 주장은 야심적이며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가설 상태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논리적 적합성을 얻기 위해선 보다 더 많은 입증자료와 치밀한 분석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남진우 문학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