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 財와 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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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지형을 보면 西高東低이다. 바다를 접하고 있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계단처름 조금씩 높아진다. 중국사람들은 “부부가오(步步高)”지형이라고 부른다. 항구를 중심으로 하는 해외수출이 성장엔진이 되어 온 중국경제로서는 동부 연안지역의 先發展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통계로 보아도 동부 연안지역은 국토의 9.6%밖에 되지 않지만 인구는 35%나 되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GDP는 중국전체의 60%를 점한다. 따라서 富에 있어서 동부가 서부보다 앞서있다.
고대 중국에 있어서도 경제적으로는 동부지역의 발전이 빨랐던 같다. 중국역사의 시작이라는 은(殷)왕조가 동부에 있었다. 殷은 黃河와 濟水를 중심으로 하여 지금의 산동성과 하남성을 어우르는 지역이다. 殷은 전설의 국가로 알려져 있다가 100여년전 갑골문자 발견으로 실존했던 국가로 인정 받았다. 갑골문자로 통해 알려진 殷은 상당히 높은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여러 가지 산업이 고루고루 번영하였다고 한다. 殷의 번영은 동쪽에 바다를 끼고 있었던 것과 관계가 있다. 지금 우리가 “재물”과 관련 되는 것의 한자에는 모두 조개(貝)라는 글자가 들어있다. 조개는 바다에서 생산되는데 금속화폐가 나오기 전에 재물의 상징으로 지금의 돈의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면 殷의 마지막 왕 주왕(纣王)을 연상하지만 주왕이 달기를 총애하고 방탕하였다는 것은 殷을 멸망시킨 周가 침공의 당위성을 위해 만든 勝者의 기록일 뿐이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 멸망당시 殷의 경제상황을 엿 볼 수있다. 당시 殷은 物資가 풍부하여 생산된 술(酒)이 넘쳐 못(池)을 이룰 정도이고, 고기(肉)가 푸짐하여 숲(林)을 이룰 정도로 풍요로웠다고 볼 수 있다. 바다가 있고 기후가 따뜻하고 비가 적당히 내리며 높은 산이 없는 평야에 펼쳐있는 殷은 부유하였음에 틀림없다.
周의 文王을 도와 殷을 멸망케 한 呂尙은 사실 殷의 사람이다. 姜씨 출신의 呂尙은 殷에서 서쪽으로 쫓겨 나 渭水에서 낚시를 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周의 文王을 만나게 된 것이다. 文王은 그를 만나 보고 先王(太公 武王)이 오랫동안 바라던(望) 인물 (太公望)이라고 추켜세워 참모로 쓴다. 야심이 대단한 文王은 강국 殷을 치기 위해서는 殷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呂尙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문왕은 姜太公 呂尙을 통해 殷의 紂王이 수도를 비운 것을 알아내고 그 虛를 찔러 殷을 공격 멸망 시켰다고 한다.
周는 殷과는 달랐다. 殷이 농산물과 수산물이 풍요로운 국가인 반면에 周는 중국 서쪽의 높은 사막지대의 유목민이 주축이 된 국가였다. 周는 바다가 멀어 조개(貝)를 구하지 못해 부유하지는 못했지만 초원에는 양(羊)이 많았다. 周는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는 理想중심의 국가였다. 그래서인지 漢字에 貝가 들어가는 것은 돈과 물질을 가르키지만 羊이 들어가는 것은 가치관을 보여 주고 있다.
중국이 개혁 개방 30년간 동부 및 남부 연안의 비약적 발전으로 세계 3위의 富를 이루어 냈다. 貝(재물)가 크게 늘어 났지만 羊(가치)과의 조화가 문제되고 있다. 중국이 강조하고 있는 “和諧社會”는 富의 재분배 뿐만이 아니라 貝와羊의 조화로운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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