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대화 시작할 때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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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6일 오전 서울 명동 롯데호텔 로비에서 대북 대응책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북한의 태도에 달라진 것은 없다. 따라서 아직은 북한과의 대화를 시작할 때가 아니다.”

최근 잇따른 북한의 유화 공세에 대해 한·미 정부 당국이 일치된 평가를 내렸다. 2박3일간 서울 방문을 마치고 6일 도쿄로 떠난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입에서도, 한국 정부 고위당국자의 입에서도 똑같은 말이 나왔다.

표현을 바꾸면, 북한이 보다 근본적인 태도 변화를 보여야만 북한이 원하는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한·미 당국 간 조율을 거쳐 나온 이 발언은 북한이 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려 북·미 직접 대화를 촉구한 북한의 입장에 대한 답신이기도 하다.

보즈워스 대표와의 협의를 통해 한·미 당국이 조율한 전략은 대화와 제재를 병행하는 ‘투 트랙 접근’이다. 과거의 대북 협상법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북한과 대화하는 동안에도 제재를 풀지 않겠다는 점이다. 정부 당국자는 “예전에는 압박전략을 구사하다가도 북한과의 대화가 시작되면 제재가 유야무야되고 말았는데, 그러다 보니 북한에 끌려가는 꼴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마음먹기에 따라 대화를 시작했다가 또 적당한 핑계로 대화를 중단하는 패턴이 반복됐고 북한은 그 틈을 이용해 핵개발을 계속할 시간을 벌었다는 것이다.

투 트랙 접근의 또 다른 측면은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협상을 통해 궁극적인 해법을 찾는다는 점이다.

이는 북핵 문제의 해결책을 외교적 해법에서 찾는 한 바뀌지 않는 대원칙이기도 하다. 다만 아직은 북한이 간절히 대화를 원한다고 해서 덜컥 응할 때가 아니란 것이 한·미의 공통된 인식이다. 미국 여기자 석방,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단 파견 등 유화 공세를 펼치며 북한이 “대화하자”는 메시지를 계속 던지고 있지만, 핵 문제 이외의 문제만 건드릴 뿐 핵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화 제의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북한이 보다 더 진정성 있는 태도를 먼저 보이라는 주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구체적인 대화 재개의 조건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이 없고 총체적으로, 유연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미 당국이 일관되게 요구하는 당면 과제는 분명히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즈워스 대표도 “북·미 양자대화를 하더라도 6자회담의 맥락(context) 안에서 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결국 북한이 적당한 명분을 찾아 6자회담(또는 변형된 형태의 다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교착상태에 있는 북핵 문제가 실마리를 찾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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